1.이 글은 2009년 소녀시대를 인터뷰했을 때의  감회를 1년 뒤 적은 글입니다. 기자는 대체로 티파니에게 받은 느낌을 주로 다룹니다.

2. 비록 1년 전 글이지만 아직 소시지닷넷에 없는 글이라 부득이하게 올립니다.  ㅠㅠ

 

http://100beat.hani.co.kr/archives/2848<==링크

 

'나는 아저씨니까 – 1년 전의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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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년 전이었다. 논현동 어디쯤의 스튜디오에서 소녀시대를 만난 그 날. 조금 추웠고 흐렸고 2월 초였고 그러니까 겨울이었다. 남성잡지 [아레나]의 인터뷰를 청탁받아 가던 길, 9명의 필자들이 9명의 멤버를 한 명씩 전담 마크하는 기획이었다. 내 담당은 티파니. 하지만 딱히 ‘가슴이 두근거’렸던 건 아니다. 소녀시대는 소녀시대요 취재는 취재였으니까.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그리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다. 필자들에게 주어진 인터뷰 시간은 멤버들이 화보 촬영 전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하는 시간이 전부였다. 아직 멤버들이 도착하지 않은 시간, 의자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마다 분주한 가운데 나만 딱히 할 일 없이 마실나온 동네 백수 같은 기분이 들어 몇 개 안되는 질문을 보고 또 보고 있었다(시간이나 기사 콘셉트 상 캐주얼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메모지를 들여다보면서 뭔가 끄적거리고 있으니 나름 할 일을 찾은 듯해서 기분이 좋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멤버들은 그때 들어왔다.

 

사실 쓸데없는 기억인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순간들, 사소하다 못해 그저 스쳐지나간 순간들, 그러나 이상하게 오래 기억되는 시간들이 있다. 그게 기억의 토대가 된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멤버들은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쳤고 나는 깜짝 놀랐고 잠깐 주변의 움직임이 멈췄다가 다시 분주해졌을 때가 선명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게 내게는 일종의 작업 시작 종처럼 들렸다. ‘자 이제 일하라고, 이 아저씨야!’ 뭐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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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가운데 인터뷰는 산만했고 질문이나 대답이나 단순했기 때문에 딱히 재미는 없었다. 다만 티파니는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것, 헤어 스타일링과 메이크업을 맡은 스탭들은 뭔가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드느라 분주했다는 것, 나는 녹음 버튼이 돌아가는 동안 주변 소음이 너무 많다고 걱정하던 걸 기억한다.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갔을 때 환율이 폭등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왔다는 얘기와 오랫동안 가계부를 써왔다는 티파니의 얘기도 기억한다. 한국어가 서툰, 그래서 한 마디라도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티파니를 보면서 문득 ‘파니파니 티파니’란 별명의 그루브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이 어린 아가씨와 얘기하는 동안 정말로 내가 아저씨란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신기했던 것도 기억한다.

 

화보촬영이 시작되었지만 인터뷰는 끝나지 않았고 촬영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맨유를 막아내는 첼시의 수비수마냥 티파니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다. 분주하고 산만한 와중에 인터뷰는 간신히 끝났고 왠지 피로했고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 화보 촬영을 다 마친 멤버들이 스튜디오를 빠져나갈 때, 문득 티파니가 눈에 띠었다. 모든 스탭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이 어린 아가씨가 성실한 학생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러고보니 티파니는 상대방의 눈을 맞추며 대화했다. 질문을 들을 때에도, 대답을 할 때에도 성실하고 예의바른 학생처럼, 그랬다. 그리고 새삼, 나는 예의바르고 성실한 친구들을 좋아하는 거군, 이란 생각을 했다. 아아 그래 어쩔 수 없지, 나는 아저씨니까. 덕분에 티파니 혹은 소녀시대를 볼 때마다 그 예의바르고 성실한 학생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래서 소녀시대에게 더 많은 관심이 생긴 건 아니다. 소녀시대는 소녀시대요 일은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