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만점 아이돌 전성시대
[아이돌 스타 대중을 바꾸다]
노래 잘하는 '동방신기' 등 각기 다른 캐릭터로 자신만의 영토 구축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의 패러다임은 셋으로 나뉜다. 인디와 90년대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아이돌. 그 외의 음악은 사실상 생명력을 잃었다. 그 중에서도 음악 산업을 주도하는 건 역시 아이돌이다.

지난 해 30만장 판매라는 기염을 토한 동방신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드는 음반 시장에서 성공한 아이돌은 몇 안남은 흥행의 보증수표다. 한 장의 앨범을 패키지를 달리 하여 여러 버전으로 내놔도 날개 돋힌듯 팔린다.

음원시장에서 아이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어디 그 뿐인가. 책에 사진집에, 모바일 서비스 등등 아이돌은 대중음악산업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는 상품이다. 90년대 중반 H.O.T.이후 1차 아이돌 전성기가 도래했던 이래, 지금의 아이돌 신드롬은 바야흐로 르네상스다.

동방신기 / 샤이니 / 원더걸스

아이돌 춘추전국 시대

음반 산업이 퇴조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이돌은 더 이상 투자가치가 없어 보였다. 유지비에 비해 수익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당초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동방신기가 국내에서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뒀고 얼마동안 아이돌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다.

판도가 바뀐 건 2007년 하반기였다. 빅뱅이 '거짓말'을, 원더걸스가 '텔미'를, 소녀시대가 '다시 만난 세계'와 '소녀시대'를 각각 히트시키면서 단숨에 시장을 재편한 것이다. 그리고 샤이니, 카라 등의 아이돌들이 데뷔하면서 아이돌 춘추전국시대를 불러왔다.

지금의 아이돌에게는 기존의 아이돌에게는 없는 게 있다. 바로 캐릭터다. 각각 다른 캐릭터로 각각 다른 시장을 공략하며 그들은 자신의 영토를 구축한다.

원조 아이돌이라 할만한 H.O.T.와 젝스키스를 보자. 그들이 다른 노래를 불렀고 다른 멤버들로 구성되어있으며 다른 회사에 소속되었다는 것 말고 무슨 차이를 찾을 수 있는가. 그러나 지금 아이돌 그룹들에게는 그 '차이'가 있다. 그것으로 시장을 주도해나간다.

동방신기는 '노래잘하는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끝난 줄 알았던 아이돌 시장이 알고 보니 황금어장이었음을 일깨워줬다. 기존 아이돌에 쏟아지는 공격의 팔 할은 '붕어'라는 것이었다. 립싱크만 할 줄 알고 노래는 못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에 SM엔터테인먼트는 연습생들 중 보컬 파트로 트레이닝 하던 다섯 명을 모아 멤버 전원의 리드 보컬화를 이뤄냈다. 그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아이돌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말끔히 걷어낼 수 있었다.

SM의 모범생들

13명이라는 인해전술로 밀어붙인 슈퍼주니어의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예능프로그램을 공략했다. 가수 활동보다는 멤버들이 이런 저런 조합을 이뤄 예능 프로를 누비면서 멤버 각각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슈퍼 주니어 M, 슈퍼 주니어 S 등 다양한 유니트로도 활동하며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렇게 각각의 멤버들이 구축한 인기와 지명도를 앨범 활동 기간에 총력 응집, 또 다른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전략은 천상지희의 부진을 딛고 SM엔터테인먼트가 야심작으로 내놨던 소녀시대에게도 적용된다. 멤버들이 짝을 지어 각각의 성격에 맞는 예능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아이돌은 가요 프로그램 외에는 별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앨범 홍보 기간에 멤버 전원이 나가 가벼운 토크를 했을 뿐이다. 음악 프로그램이 주였고 예능 프로그램은 부였던 셈이다. 그러나 슈퍼 주니어와 소녀 시대는 그 반대다. TV의 시청률 주도권이 예능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는 음악 프로그램 대신 그들은 예능을 주 활동 무대로 삼으면서 보다 많은, 보다 다양한 계층의 대중에게 얼굴을 비춘다. 그로 인해 캐릭터를 구축하고 노래하고 춤출 때는 어필할 수 없는 인간적 매력을 선보이며 아이돌로서의 가치를 드높인다. 10대, 20대에 제한된 음악 시장을 넘어 중년층 이상을 그들의 팬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넓어진 아이돌 시장을 드러내놓고 공략하는 그룹이 샤이니다.

'누난 너무 예뻐'라 노래하는 귀여운 10대 소년들이라니, 음악 시장을 주도하는 20후반 30대 초반의 여성층이 열광하지 않을 리가 없다. 샤이니의 성공은 곧 아이돌 시장의 외연확대를 입증하는 결과물이었다. 그런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에게는 공통적인 이미지가 있다. 착하고 예의바른 모범생이 그것이다. 의상은 단정하고 매너는 겸손했다. SM엔터테인먼트에 파격은 없었다. 그건 곧 한국 아이돌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다크 아이돌 빅뱅

'착한 아이돌'의 이미지를 정면으로 깬 건 빅뱅이었다. 당초 힙합을 기반에 깔고 데뷔했던 빅뱅은 모범생이 아닌 거리의 아이들 같았다. 다크 아이돌이었다. 의상은 파격적이었고 노래의 정서도 어두웠다. 그게 신선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빅뱅은 '뭔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들에게는 캐릭터만 있던 게 아니었다. '노래'가 있었다. 스타는 있되 노래는 없던 2000년대의 음악계에 빅뱅은 원더걸스와 함께 노래를 부활시켰다. 빅뱅의 노래에서 인위적인 느낌이 덜한 건 직접 노래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아이돌은 외부 작곡가의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다. 대부분 그룹의 영향력이 끝물일 때 그렇다.

그러나 빅뱅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직접 음악을 만들었고 '붉은 노래'를 제외하면 그 노래들로 인기몰이를 했다. 다크 아이돌과 싱어송라이터의 결합인 것이다. 빅뱅이 최종형 아이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복고와 섹시의 조합 원더걸스

빅뱅과 함께 노래의 힘을 일깨워졌던 원더걸스는 박진영의 프로듀싱 전략의 결정판이다. 박진영이 성공시킨 가수들은 공통적으로 섹시 코드를 깔고 있었다. 박지윤과 비가 그랬다.

섹시 코드가 접목되지 않은 가수들은 실패했다. 노을과 별이 그랬다. 원더걸스는 복고적 컨셉트에 섹시 코드를 기반으로 등장했다. 소녀시대가 S.E.S에 이어 청순발랄한 캐릭터였다면 원더걸스는 롤리타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카라는 귀여운 이미지로 승부수를 걸었다.

예능 프로에서 망가지는 걸 주저하지 않는 '생계형 아이돌'의 이미지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양분한 소녀 아이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던 무기였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대중은 TV에 매달린다. 지갑이 얇아지면 우선적으로 다른 문화비용을 줄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TV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조합이다.

음악 프로와 예능, 그리고 드라마를 누비면서 계속 얼굴을 비춘다. 게다가 데뷔전부터 방송이 요구하는 모든 기능을 트레이닝 받으니 준비된 상품에 다름 아니다. 경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아이돌의 시대는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