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일본 열도를 달구고 있다. 도쿄에서 열린 한국 대중음악 쇼케이스에 5000여명의 관중이 몰렸다. 열풍의 중심엔 한국의 파워풀한 걸 그룹이 있다. 소녀시대의 ‘지(Gee)’는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오리콘의 데일리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기록은 일본에 진출한 한국과 아시아 여성 그룹 중 처음이다.

소녀시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NHK가 프라임 타임 뉴스에서 톱기사로 다뤘고, 시사 주간지 아에라는 1960년대 비틀스가 미국에 진출한 것과 비교하면서 ‘침공’이라고 표현했다. 소녀시대는 일본의 연말 최고 이벤트인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빼어난 몸매와 가창력, 국경을 넘어서는 멜로디 등이 먹힌다는 분석이다.

소녀시대의 활약상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신통하게 여겨지는 것은 일본의 걸 그룹 소녀대(少女隊)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빗장을 열기 전에 일본 가수의 국내 공연은 꿈도 못 꿨다. 그런데도 소녀대는 일본 국적의 가수이면서 영어 노래를 담은 음반으로 국내에 상륙한 뒤 공연까지 했다. 80년대 중반, 10대 소녀 세 명이 무대에서 보여준 표정의 발랄함과 율동의 경쾌함은 놀라움이었다.

이후 소녀대는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맞아 다소 관대해진 사회 분위기를 틈타 서울가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Korea’라는 곡을 유행시키면서 인기를 다지는 듯하다가 1년여 만에 소리 없이 사라졌다. 국내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녀대는 걸 그룹의 아바타를 남겨 소녀대의 짝퉁이랄 수 있는 ‘세또래’를 만들어냈고, 세월이 지나 SES, 핑클 등을 거쳐 소녀시대의 계보로 이어지게 됐다.

소녀시대의 선전은 소녀대를 넘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공포를 말끔히 씻은 개가임이 분명하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서로의 안방 문을 열어도 일본에 밀리지 않는 역량을 키운 것이다. 대중문화의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임을 감안하면 소녀시대의 미래는 더욱 밝다.

그러나 순수문화 분야에서 한류는 미동도 않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국내 독자에 비해 일본인들이 읽는 한국 문학은 빈곤하기 그지없다.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음반은 나올 때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지만 우리 음악가의 일본 진출은 드물다. 편식은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다. 문화는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흐르고 스며들 때 가장 빛난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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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소녀시대~

앞으로도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