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말랑한 미디어]소녀시대

[미디어스]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소녀시대가 포털사이트를 이겼다.그녀들이 정규 2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포털사이트 뮤직서비스에 뮤직비디오를 공개하자 접속자들이 몰리며 급기야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다운되며 나왔던 말이다.2009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그녀들의 위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사건이었다.‘걸그룹 열풍’의 선두주자였던 원더걸스가 미국 시장 진출로 인한 공백과 멤버 교체로 국내에서의 입지가 다소 위축되고 있는 점을 비춰본다면 2010년에도 소녀시대의 위력은 강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소녀시대가 이번에 전방에 배치한 타이틀곡 ‘Oh!’를 듣고(정확하게는 뮤직비디오를 보며) 크게 흡족하지는 않았다.지극히 개인적 의견이지만 새 노래가 그녀들이 2009년 내놓았던 ‘Gee’나 ‘소원을 말해봐’에 비해 매력적으로 들리지(혹은 보이지) 않아서였다.아니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2009년의 성공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 이미지를 반복재생산하는 데 머물렀다는 인상이 짙게 풍겼기 때문이다.물론 이건 다분히 필자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판단이다.

▲ 소녀시대 2집 'OH!' 앨범 뮤직비디오ⓒ 소녀시대 홈페이지

물론 그녀들에게 아직 파격적인 이미지 교체는 오히려 위험부담이 큰 것일 수도 있다.아직 나이도 충분히 어리고 각자의 솔로 활동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그룹 활동에서는 지금까지의 이미지에서 약간씩의 변형을 주는 것이 비즈니스 측면에서 더 안정적인 전략일 수도 있다.특히 이들의 회사가 SES를 성공시키고 난 이후 근 10년간 ‘소녀시대’ 이전까지 걸그룹으로는 크게 재미를 본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크게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었다.

여하간 지난 몇 년간 주류 가요계의 트랜드는 물량작전 및 융단폭격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대형기획사에서는 1, 2년 간격으로 끊임없이 아이돌 그룹들이 생산되어 쏟아지고 있으며 ‘누가 누군인지’ 대충 파악이 되기도 전에 새로운 팀을 들이밀어대고 있다.과거에도 아이돌 그룹들이 존재했고 10대를 중심으로 가요계를 장악했지만 시스템은 굉장히 진화한 상태다.일단 팀 전원을 무조건 모두 묶어서 방송에 내보내던 과거의 관행과 달리 방송 특성에 맞게 선수들을 보낸다.케이블 시장으로 인해 보다 다양해진 방송 영역과 압도적으로 방송계를 장악하고 있는 버라이어티의 특성에 부합한 변화인 것이다.그런 회사들의 각별한 배려 덕분에 지난 1년 간 카라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의 멤버들은 거의 매일 방송에서 봤던 것 같다.(중반기부터는 브라운아이드걸스와 애프터스쿨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돌들이 방송에서 활동하는 영역은 대단히 다양하다.각종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막내 노릇을 하며 각종 노역(?)에 동원되고 있으며 토크 프로에 나와서는 자기 멤버들의 숨겨진 뒷담화로 팬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선배 연예인들 사이에 끼어 퀴즈도 풀어야 하고 각종 드라마에 정식 배역을 맡거나, 혹은 카메오로 출연해야 한다.아직까지 한국 연예 산업에서 절대적 지휘를 차지하고 방송에서 그들이 잠시 떠날 기회를 갖는 것은 오로지 인지도가 엄청나게 올라가 본격적으로 아시아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번잡하고 바쁘게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어떤 진지하고 파격적인 음악적 성취를 기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이 직업란에 가수를 제일 먼저 써야하는 이들이고 그룹 활동은 다른 무엇보다 이들의 이미지와 거기서 파생되는 산업적 가치를 유지시켜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등한시 할 수 없는 부분이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들고 나오는 후크송은 연예산업의 속성상으로는 나름 괜찮은 선택이다.원더걸스의 ‘Tell Me’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크송은 음악 활동에 전념할 수 없는 아이돌들이 한 두 곡으로 대중들에게 임팩트있게 각인되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누구나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심플하고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 가사가 반복되는 후크송의 후킹 효과(Hooking Effect)는 대중들에게 수용되는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거기에 안무와 패션, 각종 무대효과들이 결합하며 창출하는 진경은 총체적으로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를 창출해내기 때문이다.

소녀시대의 새 노래를 보면 2009년의 성공에서 얻은 결론을 토대로 늙은 오빠(혹은 삼촌) 팬들을 완전히 틀어쥐고자 작심한 듯 보인다.치어리더 복장으로 “Oh!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많이 많이 해”를 반복하는 후킹 부분은 이번 곡의 컨셉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그 어떤 걸 그룹보다도 ‘소녀’를 전면에 내세운 팀답게 소녀로서의 정체성을 쥐고 가고 있지만 그녀들이 내세우는 소녀성이란 결국 오빠들의 시선 속에 들어가 있는(혹은 들어가 있기를 바라는) 그 무엇인 것이다.그런데 여기서도 노래의 후킹 효과는 꽤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사실 ‘Oh!'의 경우 전형적인 후크송으로 보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긴 하다.독립적인 멜로디도 꽤나 길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부분 역시 어떤 멜로디와 가사가 결합된 구체적 완결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중간 중간에 브릿지 역할을 하는 별 의미 없는 영어 가사를 제외하면 대충 이렇게 연결된다.‘전에 알던 내가 아냐 - 새로워진 나와 함께 - 오빠 오빠 -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 처음이야 이런 내 말투 - 머리도 하고 화장도 했는데 - 왜 너만 너만 모르니 - 두근두근 가슴이 떨려와요 자꾸자꾸 상상만 하는걸요 - 어떻게 하나 콧대 높던 내가 - 말하고 싶어’

말하자면 어떤 오빠 때문에 애타 죽겠다는 소녀의 가슴 떨리는 상황이 피상적으로 나열된 이후에 오빠를 많이 사랑한다는 리드미컬한 여성 합창이 반복되는 양상인 것이다.물론 이 노래를 들으며 가사 하나 하나를 생각하며 듣는 이들은 거의 없겠지만 발랄한 치어리더 컨셉의 율동과 더불어 반복되는 노래가 창출하는 이미지는 어떤 의미에서건 ‘소녀를 열망하는’ 20, 30대 아저씨들의 넋을 빼놓기 딱 좋은 것이다.(그런 점에서 이번 곡에서 기존 팬덤의 주요 축이었던 10대들은 확실히 소외된 측면이 있다.)

단순함과 빠른 흡수력이란 측면에서 후크송은 먹거리로 치자면 인스턴트 식품에 비견할 만 하다.바꿔 말하면 중독성이 있지만 빨리 질릴 수 있다는 것인데 어차피 1년에 두 곡 정도만을 제대로 선보이는 아이돌 그룹에서는 아직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앨범을 사서 듣는 열혈 리스너라면 모를까, 대부분 인터넷으로 히트 싱글의 음원이나 뮤직비디오 정도를 찾아보는 대부분의 대중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그런 점에서 아이돌의 이미지 창출을 떠나서 후크송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대중 음악시장의 장기적 침체, 혹은 패러다임 교체와 맞물려 있다.음반이 잘 팔리지 않게 된 잠정적 상황 탓이거나 혹은 대중음악의 무게 중심이 아예 음반시장을 떠나버렸다는 반증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후크송의 바람은 당분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필자도 개인적으로 이런 유행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바 있다.의식적으로 불러보려고 애쓴 적이 없음에도 2008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당시 유행하던 후크송을 흥얼거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이후로 말이다.후크송의 중독성이 엄청나다는 것은 바로 소녀시대가 불렀던 (개인적으로 최고의 후크송으로 꼽는)국내 모 치킨 CF의 주제곡에서도 절감한 바 있다.주로 케이블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 광고를 지속적으로 본 결과 어느 순간 입에 곡이 딱 붙어버리는 단계를 지나 결국 “너, 너, 너무 담백하다는” 그 치킨을 주문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렇다면 후크의 유행이 창조적인 음악을 다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될까? 안 해도 된다.본래부터 대중음악은 단순한 반복으로 시작한 측면이 있다.단순함과 복잡함, 무의미함과 고도의 상징, 반복과 드라마틱함은 끊임없이 물고 물리며 대중음악산업을 쌓아온 측면이 있다.인간의 역사란 결코 일방향적으로 흐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다만 우리는 지금 대중들이 후킹을 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면 된다.기획사들이 후크송을 양산하는 것은 그것들이 팔리기 때문이지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징후일 따름이지 목적에 의한 결론이 아니란 얘기다.유행에는 다소 관대할 필요가 있다.유행이 싫거나 식상하면? 다른 걸 들으면 된다.뒤져보면 들어볼 만 한 게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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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잡학연구가 webmaster@mediaus.co.kr <SCRIPT type=text/javascript>setFontSize(0);</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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