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언니 이야기

 

"와, 저 언니 정말 예쁘다."

언니를 처음봤을 때가 기억난다. 난 입이 딱 벌어지는 줄 알았다. 정말 너무너무 예뻐서.
당시 열다섯 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쭉길쭉한 게 꼭 바비 인형 같았다.
(지금보다 약간 까무잡잡했는데 내 눈엔 그게 더 예뻐 보였다. 이국적인 느낌가지 들어서.)

주먹만한 얼굴에 장난스럽게 반짝반짝거리며 빛나는 선한 눈빛과 웃을 때 들어가는 보조개가 어린 내 마음을 훔쳤다.
(어린애들은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한다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고나 할까?

아, 착한 미녀란 저런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더욱이 윤아 언니는 알면 알수록 진국인 사람이었다. 천성이 유하고 선해서 남의 험담 같은 나쁜 말은 할 줄 모르고
언제나 양보하고 배려했다. 웃기는 또 얼마나 잘 웃는지. 남과 다투거나 화를 내는 것을 3년 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저 언니 부처 아냐?'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을 뿐인데 말이다. 욕심도 별로 없어서 남들보다 튀려 하지도 않았다.
저 언니 저래서 연예인을 할 수 있을까? 어린 내가 종종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시키는 건 뭐든지 잘해내니 재능도 탁월했던 것 같다. 성격 좋고 재능도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장난끼도 많고 웃기기도 엄청 웃겼다. 외모와 달리 털털해서 남자처럼 행동을 하기도 하고 개그맨 흉내를 내고,
엉뚱한 장난을 많이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반면, 혼자 있을 때에는 생각이 많고 깊은 언니였다. 난 그런 언니가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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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언니 이야기

 

어느날 밤에 콜 中

노래 연습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내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지 적어도 1년쯤 지난 어느 날 밤의 일이다. 한창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연습생 선배 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 지금 지하 연습실에 있는데 좀 내려와 볼래?"

어,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내가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 뜬금없는 선배 언니의 호출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좀 겁도 났다.

지하 연습실로 내려가보니 선배 언니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뭐하고 있었어?"

"위에서 연습하고 있었어요."

"그래? 그럼 노래 한 곡 불러볼래?"

갑자기 노래를 왜 불러보라는 걸까? 선배 언니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앞에서 부르기에는 내 실력이 모자라서 정말 창피한데. 혹시 노래 실력이 형편없다고 혼을 내려고 그러나?

의아했지만 하늘 같은 선배가 시키는 일이니 안부를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당시 내가 연습하고 있던 박기영의 '시작'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부르니 부르지만 참 쑥스럽고 민망했다.

'지금 나 놀리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도 조금 했다.

이 노래가 원래 이리 길었던가. 노래가 끝나기까지 선배 언니는 꿈쩍도 안 하고 내 노래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드디어 에베레스트 등정만큼 길게만 느껴졌던 노래가 끝났다. 이제, 뭘 해야 하나 싶어 나는 선배 언니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 많이 늘었네. 그런데 아직도 배에 힘이 별로 안 들어가는 것 같아. 소리가 목에서만 나온다는 느낌이랄까? 배 힘을 좀 더 기르는게 좋을 것 같아. 배 힘을 기르려면 복근운동을 많이 해야 돼. 할 수 있지?"

아, 그러니까 언니가 지금 내 노래 연습을 도와주려고 부른 거구나!

그 순간 밀려드는 감동의 물결이란!

사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배 연습생에게 실질적인 충고를 받은 것은.

연습생들의 관게란 것이 어떤 면에서는 묘하다. 아무리 선배라 해도, 나이가 많다 해도, 노래와 춤 등에 관해서는 다른 연습생에게 무어라 말하기가 꺼려진다. 자칫했다간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걸 모를 언니가 아니었다. 나를 부르기까지 선배 언니가 얼마나 고민했을까 생각하니 더욱 고마웠다.

"자, 들어봐.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소리를 내야 돼."

언니는 직접 노래를 불러주며 조목조목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난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충고들 중 가장 따뜻하고 진심어린 충고였다.


마지막으로 길지 않은 내 인생에게 가장 빛나던 십대 시절의 3년을 함께한 그녀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제시카 언니, 언니는 제가 있을 당시 여자 연습생 중 가장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한 언니였죠. 처음에는 언니가 말이 많지도 않고 제일 시크해서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말을 걸고 싶어도 못 걸고 망설였던 기억이 있답니다. 그래서 친해지는 데 좀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친해지고 나서는 언니가 정말 간, 쓸개 다 내줄 정도로 잘해준다는 걸 알 수 있었답니다. 언니가 제 노래의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던 것 잊지 않고 있어요. 말은 별로 없지만 한 번 입을 열면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해서 말에 무게감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게시나요? 언니는 제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양파 같은 언니였어요. 친해질수록 언니의 다양한 매력을 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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