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소녀시대 써니는 활달하거나 애교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함께 일해본 사람은 다들 써니가 조용하고 깍듯하며 낯가림이 심하다고 말한다.

오죽했으면 연습생 시절 말수가 적은 그녀를 본 다른 멤버가 “외국인 멤버라 한국말이 서투른가”라고 오해한 일화까지 있으랴.

하지만 카메라가 돌면,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이순규는 ‘인간 비타민’ 써니로 변해 눈웃음을 짓고 개인기를 선보이고 촬영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띄운다.

마치 마법소녀물의 주인공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변신한다. 그렇게 소녀시대의 예능을 앞장서 이끌어온 지 10년이다.

비즈니스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억지웃음을 지었다는 말이 아니다. 활동에 임하는 써니의 자세는 그보다는 책임윤리에 가깝다.

 “많은 분께 만족감을 드리는 소녀시대가 되고 싶다.” 2015년 새 앨범을 발표하며 써니는 ‘만족’이라는 단어로 각오를 말했다.

행복이나 사랑과 달리 만족은 충족시켜야 하는 욕구와 기대치를 전제한 단어다.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자신을 찾았을 테니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어떤 직업윤리다.

그래서 <무한도전> 특집에 덜컥 불려갔을 때에도, <주간 아이돌>의 정형돈한테 예고 없이 전화를 받았을 때도, 써니는 늘 제 몫의 분량을 뽑아주려 고군분투했다.

규제나 훈련이 낳은 결과라고 하기엔 이 모든 게 너무도 자연스럽다. 언니들과 많게는 15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내로 자랐으니 어리광을 피울 법도 한데,

오스트레일리아를 당일치기로 왕복하는 일정 속에서도 SNS에서 말을 거는 팬들에게 일일이 답을 한다.

화보 촬영 현장의 모든 스태프에게도 인사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으로 받아들인다.

무릎과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출국하는 사진에 팬들이 걱정하자 “공연을 멋지게 해내려는 굳은 의지의 표출이었다”는 말로 안심시키는 그녀다.

애초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게 연예인의 숙명이라지만, 써니는 여기에 ‘이수만의 조카’라는 굴레를 하나 더 안았다.

오디션 때 가족관계를 이야기한 적 없고 오디션 담당자 또한 눈앞의 소녀가 대표의 조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그가 이수만의 조카이기에 상대적으로 쉽게 데뷔했으리라 넘겨짚었다. 그래서 써니는 늘 남들보다 자기 능력을 더 많이 입증하며 살아야 했다.

그 성취는 인맥의 산물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과 헌신의 결과임을 써니는 보여주어야 했다.

내성적인 이순규 대신 활달한 써니가 되어 책임지는 삶을 살게 된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두 번이면 겸손이겠으나, 이게 10년이면…

정신적으로 조숙해진 이들은 종종 자기 자신에게는 냉정하다. 써니는 서른을 목전에 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더 이상 어리다는 이유를 핑계로 댈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뮤지컬에 다시 도전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작품에 해가 되지 않을 용기가 될 때”라고 답한다.

여행길에 오른 대선배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한 tvN <꽃보다 할배> 타이완 여행에 대해 물어보면 “제가 아닌 누가 갔더라도 그렇게들 예뻐해주셨을 것이다”라 잘라 말한다.

한두 번이면 겸손이겠으나, 이게 10년이면 써니의 본모습이 아닐까.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자신에게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프로의 삶.

자신에 대한 평가에는 한없이 냉정한 완벽주의자의 삶. “사랑받고 있는 만큼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써니는, 프로의 직업윤리를 갑옷처럼 두르고 묵직하게 걸어왔다.

열네 살 연습생으로 시작한 여정이 스물아홉의 장성한 청춘에 이르도록 써니가 사람들에게 마냥 밝고 상쾌한 ‘인간 비타민’일 수 있었던 건,

상상을 초월하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덕분에 팬으로서 행복했다. 앞으로는 조금 무책임하게 보내도 되지 않을까.

지난 10년간 팬들을 행복하게 해준 만큼 써니 자신도 더 행복해지는 걸 보는 게 오랜 팬들의 소망일 테니까.

지난 10년에 감사하며, 1989년 5월15일 태어난 이순규의 생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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