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티파니를 위한 변명


티파니는 잘못했다. 굉장히 잘못했다. 자신의 SNS에 욱일기 그림이 담긴 사진을 올리다니. 그것도 하필 광복절 바로 전날에. 그럼에도 잠시 그를 변호하고자 한다. 욱일기 문양의 사용이 괜찮다고 우길 생각은 추호도 없고, 두 번이나 사과했으니 용서하자고 설득할 의도도 없다. 단지 그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이 과연 온당한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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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는 미국에서 태어나 15세까지 자랐고, 그 이후에는 기획사의 기숙사에서 살아왔다. 데뷔 초기에는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 가벼운 놀림감이 되곤 했을 정도니 또래들에 비해 한국사회나 문화에 대해 무지할 개연성이 높다. 반면 그의 소속사는 특정 국가에서 공연할 때는 어떤 색의 아이섀도를 써야 하는지까지 명시된 매뉴얼을 만들어 숙지시키는 철두철미한 회사로 알려져있다. 티파니가 욱일기의 역사적 의미를 미처 인지하지 못해서 이 사달이 났다면, 그의 미숙함 이상으로 소속사의 안이함이 지적되어야 마땅했다.

그렇다고 소속 가수에게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획사를 비난하는 것은 또 정당한가? 설령 교육을 한다 하더라도, 이 교육의 목적은 소속 연예인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내면화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이들의 상품성을 훼손하는 사건, 예를 들어 티파니 욱일기 사건 같은 경우를 예방하고자 함일 것이다. 소속 가수는 ‘상품’이고, 상품 판매를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사기업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힘 빠지는 일이다.

진짜 손가락질이 향해져야 할 대상은 한 외국 국적의 연예인도 아니고, 중소규모 사기업도 아니다. 더 심한 반역사적 행태를 보이면서도 태연하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나라의 소위 집권세력, 그리고 “뭣이 중한지” 구별하지 못하거나 안 한 채 ‘만만한’ 연예인만 두들겨패는 일부 언론들이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가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안 의사가 사형을 당한 곳은 뤼순 감옥이다. 티파니의 욱일기는 개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였지만, 대통령의 실언은 청와대의 인재들이 (아마도) 다듬고 다듬어 만든 공식 연설문이었다. 티파니는 유명할지언정 공적 책임은 제한적인 셀러브리티지만 대통령과 연설문 작성팀은 이 나라의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할 공인들이다. 티파니는 두 번이나 사과했고 고정출연 중이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지만 청와대는 아무런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하얼빈 실언만이 아니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제강점기의 아픔은 사라졌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언급도 이번에는 없었다. 그 빈 곳은 북한과 사드 얘기가 채웠다. ‘건국 68주년’이라는 운을 띄웠고, 아니나 다를까 여당의 신임 대표는 건국절 논의를 하자고 팔을 걷어붙인다.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반 토막 내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한 국책연구원의 센터장은 사건이 보도된 지 한참 만에야 ‘정직 2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권력자’들이자 ‘공인’들의 민낯이 이럴진대 어떻게 티파니만 패륜아 취급을 할 수 있겠는가.

일부 언론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한 신문사는 티파니의 욱일기 사건을 보도하면서 “대한민국 가수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해외에서 활동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난했다. 웬 국가주의의 등장인가. 한 방송사의 뉴스 앵커는 올림픽 배드민턴 경기에서 일본이 한국에 승리한 소식을 전하면서 “축.하.합니다. 티.파.니.씨!”라고 목소리 높여 빈정댔다. 치졸하다. 방송사의 권위도, 뉴스 프로그램의 품위도 내팽개친 선정적 멘트를 풍자라는 명분으로 변명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에 관한 한 한없이 약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을 비판하고 조롱하면서 클릭 장사를 하는 언론들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서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3년 전 MBC의 <무한도전>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편지를 읽은 적이 있었고, 며칠 전에는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다섯 달 전KBS의 <1박2일>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직전 3일간의 발자취를 좇아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광복절 경축사보다 예능오락 프로그램들로부터 더 역사적 의미를 느끼고, 더 진한 감동을 느끼는 현실이라니! 심지어 연예인들이 공직자들보다 더 믿음직해 보이기도 한다. 티파니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는 무지로 인한 실수를 저질렀고, 최소한 지적을 받자마자 사진을 지웠고, 두 차례 사과했고, 현재 근신 중이다.


<윤태진 | 연세대·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725752



경향신문에 실린 정식 칼럼입니다.


그나마 사태 파악을 한 칼럼이라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