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악 확대로 아이돌 그룹은 더욱 진화

아이돌 그룹의 진화가 눈부시다. 대중음악계는 침체기에 빠져 있지만 아이돌 그룹은 오히려 전성기를 맞이한 듯하다.

1996년 HOT의 데뷔로 한국에 첫선을 보인 아이돌(Idol) 그룹은 최근 몇년 사이 10~20대들에게 익숙한 디지털 음원이 확대됨에 따라 더욱 확장되면서 위축된 가요계에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단순히 노래하는 인형이나 로봇 같은 느낌에서 탈피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자작곡을 싣는가 하면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춘 아이돌도 등장했다. 멤버 각자가 연기와 버라이어티 예능물 패널, MC, DJ, 솔로가수 등으로 개인 활동을 하면서 필요할 때는 뭉치는 전략도 요즘 쇼비즈니스 환경에 부합된다.

그런 가운데 신화가 24일 데뷔 10년을 맞았다. 아이돌 그룹이 10년간 유지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일본에서는 SMAP, V6 등 10년 이상 활동하는 그룹들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10세짜리 아이돌은 처음이다.

그룹활동과 개인활동을 병행하는 신화는 최근 그룹 활동의 비중이 줄었다. 6명의 멤버가 모여 신화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음반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는 않다. 그래도 아이돌 10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아이돌 1세대-립싱크 가수 한계>

아이돌은 원래 가수 영화배우 탤런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팬 영향력이 큰 청소년들을 겨냥해 기획된 가수를 말한다.

아이돌 1세대는 HOT 젝스키스 SES 핑클이다. 남성의 경우 미소년-전사-성숙(세련), 여성의 경우 발랄-청순-성숙(숙녀)의 모습들을 보이며 수명을 늘려왔다. 이들은 화려한 댄스와 귀여운 외모로 멋있기는 하지만 인간미가 결여돼 있었다.

HOT의 경우 3집을 기점으로 멤버들이 직접 작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1세대 아이돌은 남이 작곡한 곡을 받아 립싱크를 해 라이브 실력이 부족한 가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신화는 태생은 1세대와 같지만 ‘따로 또 같이’라는 1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유통기한을 늘려나갔고 2004년 7집 ‘브랜드 뉴’에서는 팬층을 30~40대까지 확장시키는 등 대중화에도 성공해 1.5세대로 분류된다.

<아이돌 2세대-안정된 라이브, 해외시장 진출>

동방신기와 보아가 해당되는 2세대에 오면 안정된 라이브 실력을 보이기 시작한다.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 능력으로 일본 등 아시아에도 진출한다. 둘 다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라 아이돌 그룹이 해낼 수 있는 성과치고는 괄목할 만하다. 그러면서 대중성과 음악성을 조화시켜나가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외모짱, 노래짱, 댄스짱으로 선발된 남성 5인조 동방신기는 1980년대 다섯 손가락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풍선’을 불러 30~40대로의 팬층 확장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개별활동을 하지 않는 동방신기와 달리 슈퍼주니어와 SS501은 아예 개별 활동을 미리 예상하고 그룹을 출범시킨 2.5세대로 분류될 수 있다.

슈퍼주니어는 신화를 모델로, SS501은 동방신기에 대응하는 아이돌로 각각 탄생했다. 두 그룹 모두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미소년들이 포함돼 있다. 특히 슈퍼주니어는 멤버들의 개별 활동을 통해 영화-예능물-드라마 등 각 분야에서 전방위 활동을 펼치며 아이돌 그룹 활동에 새 지평을 열었다

<아이돌 3세대-작곡 프로듀싱, 쉽고 친근하게>

아이돌 3세대는 빅뱅과 원더걸스, 소녀시대다. 3세대에 오면 라이브 실력은 필수 덕목이다. 빅뱅은 현재 동방신기와 함께 한국 아이돌의 양대산맥이다. 빅뱅은 미소년 이미지가 아니라 외모부터가 거칠다. 하지만 실력으로 무장돼 있다.

‘거짓말’ ‘마지막 인사’ ‘Crazy Dog’ 등 중독성 강한 히트곡들은 음악적 완성도까지 갖췄다.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이사에 의해 조기 발굴된 빅뱅은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지는 중이다.

작곡 등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G-드래곤과 파워풀한 랩을 구사하는 T.O.P 등 멤버들은 음악성과 스타성을 두루 갖췄다.

요즘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 중인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선배 아이돌이 추구했던 신비한 이미지를 걷어버리고 친근한 이미지와 쉬운 음악을 탑재해 10대 위주의 팬에서 기성세대로까지 팬층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빅뱅도 초창기 강한 흑인 리듬의 힙합 대신 쉬운 클럽댄스풍으로 변화를 주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아이돌이라고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시대에 맞는 생존법을 찾지 못한 팀들도 많았다. 이글파이브는 사라졌고 배틀과 카라는 아직 정규 앨범을 내지 못했다.

성공한 아이돌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즐겁게 소비되는 음악은 분명 대중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트렌드에 민감한 아이돌의 음악을 듣고 나면 허전함도 남는다. 음악의 이벤트화라는 기분 같은 것이다. 아이돌에게 단기간에 소비되는 음악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