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써두었던건데.. 항상 시험 볼때도 처음 찍은게 맞듯이, 7월에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더 와닿는 것 같아서 지금 올려봅니다.
엠카 비방 무대 보고 쓴 글이에요. 좀 깁니다. ㅎㅎ


소녀시대 - 다시 만난 세계

시대와 영역을 막론하고 대중음악계는 주류가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게 되면
반대급부로 새로운 시장 수요 또한 파급력을 얻을 양분을 얻고 그것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기폭제가 되는 순환이 계속되어 왔다.
메탈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신스팝과 가벼운 댄스 음악이 또 다른 시장을 구축했고,
얼터너티브 락이 휩쓸고 지나가던 시기에도 머라이어 캐리와 스탠더드 팝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며,
힙합과 펑크가 시장을 관통하던 때에도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위시한 틴 팝이 한 쪽에서 호응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가요계는 지금 전체적으로 겉멋에 취해 있다. 아니, 그러한 겉멋이 사랑받고 있다.
감정 과잉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현 음악계의 주류는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들보다 감정을 생산하는 노래들에 가깝다.
댄스는 하나같이 '너와의 오늘밤' 을 꼬드기기에 바쁘고, 발라드는 하나같이 '공감의 영역을 벗어난' 알 수 없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댄스곡들은 몇 달 전 영미권 히트 트렌드를 고스란히 적용해 놓은, '아는 사람들에겐 3류 사운드' 요 '모르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노래'가 대부분이고,
발라드곡들은 복제된 인기 코드를 사용하여 자극적인 멜로디 라인 하나로 '얼른 벌고 얼른 빠지는' 스트리밍/음원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자, 이제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새로운 수요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원더걸스와 카라, 베이비복스 리브, 캣츠, 천상지희 등 최근 들어 여러 여성그룹들이 가요계를 접수하려 하고 있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점을 상기해보자. 이들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중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중들은 음악적으로 확실한 캐릭터를 원한다. 이 점은 대중들이 대중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쿨이든 코요태든 성시경이든 비틀즈든 머라이어 캐리든, 대중들은 음악적으로 정립된 캐릭터를 원한다.
'지갑을 열어주는 인기' 라는 것은 곧 '다른 아티스트가 보여줄 수 없는, 들려줄 수 없는 것을 주는 가치' 에 반응하게 되어 있다.
어떤 아티스트가 인기가 있는 것을 설명할 때, 혹은 음반 판매량이 높은 것을 설명할 때 여러 이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인기 아티스트가 지속적으로 음반 판매량이 높고 인기를 유지하는 것을 볼 때, '그 사람만의 색' 이 없는 케이스는 드물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대중 문화에 노출이 되어 있고, 이왕이면 흰 쌀밥(주식)만 먹기 보다는 여러 종류의 반찬도 먹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섣불리 자신이 가진 재능과 한계를 모르고 함부로 주식으로 자리잡으려 되도 않는 쇼를 보여주기 보다는,
한가지 반찬이라도 확실히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반찬이 되는 것이다. 그 반찬을 주식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이 치열한 뮤직 비즈니스 계에서 살아남는 승자들은 대체로 분명한 스타일을, 그것도 남들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다.
아무리 그 가수가 비디오형이든 버라이어티형이든 결국 가수의 인기는 '음악적' 스타일에 결정된다.  
아무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인기가 높고, 미남/미녀의 아티스트라 해도, 아무리 노래를 출중하게 한다 해도 결국은 '음악'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왜? 진정한 인기는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돈을 쓸 때 생기고, 그 소비의 대상은 결국 앨범이든 싱글이든 음원이든 '음악' 이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만큼 소녀시대의 등장은 시장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시점에 이루어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안목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소식통에 의하면 소녀시대는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 데뷔 시점이 미뤄지고 있었다.
분명 시장이 이 정도로 소녀시대를, 소녀시대의 음악을, 소녀시대의 스타일을 원하도록 달아오를 시점을 기다렸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시대는 과연 앞서 설명한 수요를 대변하고 있는가? 그렇다. 소녀시대는 타 가수들이 보여주지 않는 군무를 쭉 보여줄 것이고
(수익성 계산에 영민한 SM엔터테인먼트에서 굳이 많은 인원을 넣었다면 분명 9+시너지를 노렸을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짐작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가수들이 보여주지 않는 발랄하고 청순하면서도 당차고 신선한 노래를 들려주려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캐릭터/스타일로. 어설프게 해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건 이미 SM엔터테인먼트가 충분히 경험해온 바다.
9명을 동시에 런칭시키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기 전까지는 데뷔시키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소녀시대의 음악은 또 어떠한가?

노래의 완성도를 떠나서, 일단 SM엔터테인먼트는 '다시 만난 세계' 의 프로듀싱에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의 성공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즉, 이것저것 잡으려 하지 않고 분명한 시장을 노리며 완벽한 하나의 컨셉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큰데, 더 이상 '처음부터 모든 대중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겠다' 는 의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슈퍼주니어의 전방위 활동을 보건대, 분명 소녀시대는 여성 그룹의 입장상 더 어리고 더 대중적으로 나왔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곡을 들고 나온 점을 미루어볼 때, 일단은 매니아층의 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약간의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너무 대중적인 노래로 나올 경우, 후속타가 좋더라도 '그런 노래만 하는 그룹'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이럴 경우에는 9명 모두가 개인활동을 할 때 기반이 될
팀의 인기를 지속적으로 답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매우 치밀한 계산이다.
(핑클의 경우만 봐도, 1집의 연이은 히트 이후에 곡에 힘이 빠졌다면 지금같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효리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1집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S.E.S의 경우에는 '너를 사랑해'를 부르면서도 언제든지 U나 Dreams Come True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들이 이미 초기에 스펙트럼을 넓혔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아티스트의 유니크한 면을 바탕으로 분석해 보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는 분명 잘 만들어진 댄스곡이다. 아무나 부를 수 없는 노래라는 점에서 일단 먹고 들어간다.
흡사 S.E.S의 I'm Your Girl 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게다가 현 시점에서 '꿈꾸는 세대'의 취향을 내용 면에서나 방법 면에서나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마치 아메리칸 아이돌의 A Moment Like This 가, This is My Now가, I Believe가 사랑하는 감정 + 데뷔하는 심정을 동시에 담았듯이,
소녀시대의 화려한 데뷔를 지켜보라는 듯한 가사와 멜로디 진행, 보컬 어레인지먼트, 안무가 정확히 한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자로 잰 듯한 완벽한 데뷔곡이랄까. 그 점이 I'm Your Girl 과 다르다면 다르겠다.
완벽한 캐릭터요 스토리텔링이요 선언식이다.

한 소녀가 꿈을 꾼다. 그 꿈은 연약한 것이 아니라 매우 당차다. 당신(혹은 대중)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매우 영롱하게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그 길이 힘들 것임을 알고도 있으며 포기하지 않으려는 근성도 보인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하지만 사랑받고 싶어하고 자신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상처입은 내 마음까지/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 멈춰져 버린 이 시간)
그리고 솔직하게 꾸미지 않는 모습은 (-사랑해 널 이느낌 이대로) 철저히 요즘 젊은층의 직선적이면서도 순수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제 어떠한 관계 (혹은 데뷔)를 시작하는 마음 또한 담겨 있다. (-슬픔 이젠 안녕 /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후렴이다. 긴장이 한껏 고조되다 한번에 확 몰아치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는 이 부분은, 소녀들이 드디어 틀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인상을 깊게 심어주고 있다. 더구나 일렬로 서서 앞으로 나가면서 발차기를 하는 그 안무는 그러한 메세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마지막 안무에서 고개를 숙였다가 다같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드는 장면은, '이제 우리가 왔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같은 메세지를 던지는 것 같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무대는 마치 한 편의 쇼 같다. 안무, 노래, 컨셉 모두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어떠한 메세지를 안겨다주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다.
그런 점에서 소녀시대를 아예 처음부터 하나의 '제대로 된, 어설프지 않은' 위치에서 시작하게 하려 하는, 탄생부터 스타로 만들겠다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야심이 돋보인다.
이러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자로 잰듯한 느낌은 분명 '대단하고, 접근하기 힘들고, 함부로 뭐라 하기 힘든' 매력을 지니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런 점은 확실히 스타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게 하는 큰 요소도 맞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노래는 오히려 Hug의 여자 버젼에 어울린다. 슈퍼주니어의 여자 버젼을 표방한 소녀시대에게는 좀 더 대중적인 노래가 떨어졌어야 한다.
적어도 인지도를 쌓기 위해서는 '더 함부로 할 수 있는', 어떤 빈틈이 필요하다. 이 노래, 이 쇼는 너무 무섭도록 완벽하다. 그냥 학교 친구의 느낌보다는, 먼 나라에서 온 듯한
신비한 소녀들 같다. 그러한 완벽함을 즐기는 필자 같은 대중들에게는 먹힐지 모르나, 역시 큰 도약을 위해서는 극대중적인 한 방이 더 필요해보인다.
하지만 이를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 굳이 이러한 무리수를 둔 것을 보면, 분명 소녀시대는 그 한 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한 방이 있기에 소녀시대는 안심하고 이 노래를 런칭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소녀시대는 도약할 것이다. 그 도약 후에도 소녀시대는 이 노래 덕분에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는 이러한 신비주의에 가까운 노래를 들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국민 스타라는 말이 무색하다. 적어도 인기를 떠나 음악인으로서의 입지에서는 그렇다. 누군가가 이러한 한계 아닌 한계를 깨주는 음악을 들고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차라리 자신들만이 보일 수 있는 분야에서 화끈한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그러한 매력으로 어설프게 용의 몸통이 되는 것보다는 닭의 머리가 되는 것이 더 가치있지 않은가?  


요약: 당찬 아홉 소녀들의 출사표, 그리고 소녀들의 꿈과 희망이 펼쳐진, 빈틈 없이 채색된 스케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