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좌절의 순간은 있기 마련입니다.

항상 의도한 대로 풀리기만 하는 인생이라면 그건 나름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너무 의도한 대로 풀리지 않으면 힘들긴 하죠.

여기, 정말 되는 것 없고 짜증만 가득했던 그날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2007년 9월 14일에 있었던 일을 재구성 하였습니다.

-Jess-








무대에서 내려 오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습니다.

당황스럽고 민망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그렇게 연습하고 함께 호흡을 맞추고 노력해 왔는데...

오늘 내 실수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안그래도 스케쥴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다들 피곤하고 힘들텐데...

다른 멤버들은 다 잘 참으면서 잘 했는데...

왜 하필 제가 그랬을까요...

앞서서 무대에서 내려가는 태연의 뒷모습을 차마 바라볼 용기가 안납니다.

그때 였습니다.

계단에서 발을 내딛는데 무언가 휘청하는 기분과 함께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기분입니다.

아무래도 발을 잘 못 디딘 것 같습니다...

차마 비명조차 지를 엄두도 못내는 그 순간에 뒤에서 누군가 제 팔을 낚아 챕니다.

철렁 내려 앉은 가슴을 추스리고 뒤를 보니 제 팔을 잡아준 것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유리였습니다.


"괘,괜찮아...?"

"어...어...."


제가 다시 중심을 잡자 유리가 팔을 풀어줍니다.

유리는 연신 걱정어린 표정으로 제 얼굴을 빤히 바라봅니다.

그런 유리의 이마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제 이마에 땀이 더 많겠지요.

지금 기분도 반영이 되어서 평소보다 더욱 힘든 기분입니다.

다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대기실로 향합니다.

눈앞이 어질어질 하고 자꾸만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 벽에 손을 짚은 채로 걸어갑니다.

누군가 또 다시 뒤에서 제 팔을 잡습니다.

돌아보니 티파니입니다.


"왜...?"

"
흔들리지마. 바보야.  그정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예전에 제시카 네가 내

게 해준 말이
."


파니가 영어로 말을 합니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입니다.

아아...

제 얼굴이 지금 말이 아닌가 봐요...

호흡은 거칠어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 제 얼굴을 보고 저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겠죠.

겨우 파니의 부축을 받고 대기실로 들어갑니다.

먼저 와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저를 바라봅니다.

수영이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립니다.

아마도 제가 불편할까봐 배려를 해주려는 거겠죠...

다른 아이들도 각자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웁니다.

압니다.

제가 민망해하고 불편해 할까봐 애써 고개를 돌려주는 거라는 걸...

조용히 곁에 서 있는 파니를 밀쳐 냅니다.

애써 후들거리는 제 두다리로 섭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누구하나 눈을 마주치는 아이가 없습니다.

알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이 서운합니다.

울컥합니다...

잘못한 것은 나임에도 괜히 아이들에게 심통을 부리고 싶어집니다.

그때 저만치 옷장앞에서 벽을 바라본 채 내게 등을 내보이고 있는 태연이의 뒷모습이 눈

에 들어옵니다.

작은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색한 공기가 대기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아이들은 불편해 합니다.

하아......

이런건......


"태연아...저기...미안해."

"......괜찮냐?"

"어? 어..."


태연이가 몸을 돌려 정면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화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는 평안한 얼굴입니다.

다만 어딘지 살짝 부은 듯 한 느낌입니다.

볼에 한가득 바람을 불어 넣던 태연이가 제 쪽으로 다가옵니다.

다른 아이들이 긴장하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전해져 옵니다.

새삼 오래전에 연습생 생활때 자꾸만 화음이 맞지 않아서 처음으로 태연이랑 말다툼을

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도 태연이는 처음에 화를 내지 않고 이런 식으로 다가 왔었죠...

그리고 그때의 저는 남에 대한 배려는 엄두도 못낼 정도로 코너에 몰린 상태여서 그런 태

연이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서 결국 말다툼을 했던 게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지금은......


태연이가 절 안아줍니다.

포근하고 따뜻한 태연이의 품이 노골적으로 느껴집니다.

무대의 열기가 남아서 땀냄새와 어쩐지 불쾌한 습기가 느껴지지만 너무나도 의외의 상황

이라 그대로 가만히 태연이가 안아주는 대로 가만히 둡니다.


"기억나지?  예전에도 한번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우리 모두 연습생이

였지.  정신적으로 많이 내몰려 있었고 힘들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기 보

다는 서로를 경쟁자로서 생각했던 때였지... 그래도 말야 난 단 한번도 네가 내 친구라는

생각을 버려본 적이 없어.  그리고 지금은 그런 친구들이 나 말고도 7명이나 이렇게 있잖

아?  실수한거?  괜찮아.  우리가 커버해줄게.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어줄게.  대

신에 우리들중 누가 실수를 하면 시카 네가 커버해주면 되는거야..."


수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가옵니다.

그리고 큰 키로 우리둘을 감싸 안습니다.


"미안해 하는거 알아.  민망한 것도 알고.  그래도 말야.  네 실수가 우리 모두의 실수라고

생각하는게 맞는거야.  그렇게 생각을 해줘야지 우리도 우리의 실수기 때문에 함께 실수

한 부분을 메꿀 수 있는거고..."


파니가 손가락을 꼬물딱 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다가 옵니다.

그리곤 제 옷깃을 살포시 잡고는 입을 엽니다.


"혼자서 다 끄러안으려고 하지마.  그러면 내가 네 친구라고 느끼기 힘드러..."


서현이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수건을 들고 제 이마의 땀을 닦아줍니다.

말없이 땀을 닦아주는 서현이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맺힌 것이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체온을 느끼며.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느끼며...

옷깃을 잡아당기는 파니의 여린 손길을 느끼며...

이윽고 울음이 터집니다.

어색한 공기가 지배하던 대기실에 제 울음 소리가 퍼집니다.

어느새 우리 9명은 모두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안아서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1위 발표를 하는 무대에 다시 올라갑니다.

울어버려서 눈은 붓고 화장도 다 지워졌지만 큐사인에 어쩔수 없이 무대에 오릅니다.

애써 카메라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 멤버들의 뒤에 숨어서 고개를 숙입니다.

제 앞에 수영이와 서현이, 윤아, 유리가 마치 진이라도 치듯이 서 있습니다.

모두가 뒤로 손을 내밀어 서로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 눈물이 나옵니다.

너무 고맙고...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괜찮아...?"

"......네..."


규리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 어깨를 감싸 안아줍니다.


"실수 한 것 때문에 그래...?"

"......"


제가 대답을 못하자 실수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도 생각한 규리언니가 어깨는 토닥여 줍

니다.


"괜찮아... 겨우 그런거 가지고 그렇게 울면 어떻해?"

"...흑...흑..."


그런게 아니에요...언니.

여기 앞에 애들 봐요.

저 실수해서, 풀죽어서, 눈물보이는거, 방송에 나가는거, 상처받는거...

모두 걱정해줘서 이렇게 저 지켜주고 있어요.

그게 너무 고마워서...

말로는 차마 어떻게 표현할 방법을 못 찾아서...

이렇게 바보 처럼 울고만 있네요.

어쩌면 좋아요?

저... 이 아이들이 너무 좋아요...

이렇게 절 믿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이 아이들...

너무 사랑하는 이 아이들...


그렇게 말로는 차마 나오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마음속으로만 새겨가며 그날의 기억을 떠

올립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지금보다 어른이 되면 그때는 꼭 이야기

해줘야죠.

그때 내가 그런 기분이였다고.

너무나도 고마웠던 그때 감정을 이제서야 전해서 미안하다고...

이렇게 한살 한살 더 먹어가면 언젠가 꼭 전할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겠죠?

그때까지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면서 계속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

다...

함께 해줘서 너무나도 고마워...





[알발연 : 싴탄일기념] 외전 "Complete" 끝.



Presents by
DP.SOSI

Written by 밝은탱

Main Cover by
[Pang]



시카야 생일 축하해!!!
 



>_<♡





※이번 외전 EP를 소시당 및 제시카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모든 팬들에게 감

히 바칩니다.

당신들의 멋진 모습이 언제까지라도 제시카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기를!!!





※아울러 오늘은 알발연이 연재된지 딱 한달째를 맞이하게 되는 날입니다...ㅎ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도 달려왔네요.

새삼 둘러보니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가를 뼈저리게 느

끼는 중입니다.

제 보잘 것 없는 글들로도 이렇게나 관심과 사랑을 받는데...

하물며 소녀들이 여러분들로 부터 받을 사랑을 상상해보니 아득해질 정도로 부러

워 지는군요^^

여러분들의 존재야 말로 그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