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온지는 좀 된 글인데 검색해보니 안올라온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매거진t에 연재하시는 평론가 강명석님의 평론글입니다. 이분 글들 읽다보면 소름이 돋는다는 ㅡ;;
대중가수에 대해 이정도의 해석을 할수 있구나 라고 생각이 드네요
아 참고로 작년 10월달의 글입니다. 지금 상황과는 좀 차이가 있을수 있습니다.

* 깁니다. 안 읽으면 어쩔 수 없죠 뭐.


 ‘드디어’ MBC <뉴스데스크>에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를 휩쓴 뒤 여성 아이돌 그룹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로 집중된 적은 없었다. 물론 지금 잠실 야구장에 ‘Tell me'를 울려퍼지게 만들고, 한양대 축제를 ’우정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원더걸스의 인기가 어느 정도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화제를 모으고, 동방신기와 슈퍼쥬니어, 그리고 빅뱅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올해는 지난 몇 년동안 대형 기획사에서 공을 들였던 새로운 아이돌 시대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슈퍼쥬니어를 통해 영화 사업에 진출했듯, 아이돌 그룹은 단지 인기 가수가 아니라 SM과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사업 영역 확장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만큼, 세 대형 기획사들도 세 회사가 모두 공을 들이고 있는 해외 진출과 더불어 ‘음악이 안 팔리는 시대’에 대한 준비를 완료한 셈이다.


 그러나, 세 회사가 아이돌 그룹을 성공시킨 것은 그들이 가요계에 대비하는 공통의 마케팅 기법과 수익모델을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새로운 시대는 세 회사의 차이를 훨씬 더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음원 시장이 극도의 불황에 빠진 시대에 기획사들은 그룹의 활동 방식부터 팬층과 궁극적인 수익 모델까지 보다 정교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저 음악과 비쥬얼 컨셉만 달리해서 음원을 성공시키면 그만인 시대는 지났다. 그리고 이런 결정의 근본에는 회사의 영업 방침과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이라는 오너의 개인적인 스타일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그 극단적인 예다. 두 그룹은 소녀 그룹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단 한 부분도 교집합을 이루지 않는다. 원더걸스는 SM에서 나올 수 없고, 소녀시대는 JYP에서 만들 수 없다. 원더걸스의 ‘Tell me'는 빅뱅의 ’거짓말‘과 함께 지금 가요계에서 가장 놀라운 히트를 기록했다. 곡의 인기 때문이 아니다. 원더걸스는 소희가 아직 개봉 전인 영화에 출연했을 뿐 개인 활동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 활발히 출연해 인기를 모은 것도 아니다. ’Tell me'는 ‘팬질’이란 건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30대 중년 남성까지 끌어들인 춤과 노래의 힘으로 지금같은 반응을 끌어냈다. 요즘처럼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제일 재미있는 음악프로그램’이었던 MBC <쇼바이벌>마저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되고, 케이블 TV에서는 음악 프로그램보다 리얼리티 쇼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시대에, ‘Tell me'는 오로지 즐거운 무대의 힘으로 성공한 것이다.


이런 소녀들이 있다니


 물론 즐거운 노래와 따라추기 쉬운 춤을 만들었다고 하면 된다. 박진영이 아니라도 누군가 ‘Tell me'같은 노래와 안무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Tell me'는 박진영과 원더걸스가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Tell me'는 모두가 부를 수 있지만, 반대로 모든 가수가 성공시킬 수는 없다. 사실 ’Tell me'는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두가지 요소를 극단적으로 과장한 노래다. 바로 섹시함과 애교다. 소희가 히트시킨 ’어머나‘ 부분의 동작을 비롯해, ’Tell me'에서 원더걸스의 멤버들은 과장스럽게 윙크를 하거나 계속 뛰어다니면서 애교스러운 분위기를 바탕에 깐다. 그리고, 거기에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전신으로 웨이브를 하거나 손으로 몸을 훑는 동작으로 섹시함 역시 강조한다. 창법도 마찬가지다.

선미가 비음을 섞으며 마치 트롯처럼 목소리를 꺾는 ’너도 잘 좋아할줄 몰랐어...‘같은 부분은 한껏 애교를 부리면서도 그 밑에 섹시함을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이다.


 ’Tell me'에서 지향하는 복고 디스코 컨셉 자체가 그렇다. 여성이 복고 디스코를 소화하면 더 활동적이고 발랄하면서도 보다 직접적으로 섹시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Tell me'는 노래 자체로서는 과할 정도로 여성의 교태스러운 모습이 부각된다. 단적으로 UCC를 통해 공개된 박진영의 ’Tell me' 춤을 보라. 한국에서 가장 섹시함을 잘 살리는 댄서 중 한명인 그가 추는 웨이브는 '19금‘이라도 붙여야 할 만큼 섹시하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성적인 느낌이 풍겨서 접근하기 쉽지 않다. 만약 성숙한 S라인의 몸매에 20대 중반을 넘긴 여성이 ’Tell me'를 들고 나왔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둘 중 하나다. 너무 섹시해서 부담스럽거나, 아니면 주책이 되거나.


 그래서, 'Tell me'의 핵심은 ‘Tell me'라는 노래 자체가 아니라 ’Tell me'가 원더걸스를 만나면서 생기는 원더걸스의, 혹은 'Tell me'라는 곡 자체의 캐릭터다. ‘Tell me'는 애교와 섹시함이 극단적으로 과장된 노래지만, 그걸 소화하는 원더걸스는 소미와 선미가 이제야 만 15살인 소녀 그룹이다. 그룹에서 가장 어린 외모를 가진 소희가 ’어머나‘ 부분을 소화한 건 ’Tell me'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머나’ 자체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과장된 애교일 수 있지만, 이제 만 15살인 소희가 ‘어머나’를 할 때는 유혹이 아니라 소녀가 스스로 즐겁게 노는 유희이거나,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귀여운 재롱에 가깝다. 그건 마치 영화 <레옹>에서 킬러가 마릴린 먼로의 옷을 입고 나온 마틸다를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성인 남자가 그 모습을 보면서 성적인 섹시함을 느꼈다면, 혹은 그런 쪽으로 호감을 표현한다면 그건 변태다. ‘소녀 그룹’ 원더걸스가 아무리 손으로 몸을 훑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도 그건 소녀들의 유희일 뿐이다. 이는 ‘너도 날 좋아할 줄은 몰랐어 어쩌면 너무 좋아 꿈만 같아 ... / .... 어쩜 내 가슴이 이렇게 뛰니 가슴이 정말 터질 것 같아’라는 ‘Tell me'의 가사를 통해 보다 명확해진다. 이건 교태를 떠는 성숙한 여성이 아니라 수줍은 사춘기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다. 그들은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실제로 그걸 보여주기엔 수줍고, 그럴 수 있는 나이와 몸도 아니다.


한국 남자들이 모두 좋아하는 소녀들


 원더걸스가 ’Tell me'를 통해 구체화 시키고 있는 것은 섹시하고 싶지만 아직은 섹시할 수 없는, 하지만 좋아하는 남성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싶은 소녀의 이미지다. 그만큼 예쁘고, 귀엽고, 거기다 편하게 다가설 수 있다. 대학에서 늘 생글생글 웃고 다니는 귀여운 새내기 후배가 먼저 팔짱을 끼며 밥 사달라고 조를 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선배 남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지지 않고, 그렇다 해도 그들이 그 여학생과 연애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남자들은 그런 상황을 꿈꾸고, 그런 소녀들이 나와 즐겁게 대화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그런데 ‘Tell me'는 그런 소녀가 나에게 다가와 나름대로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귀엽게 춤을 추고, 날 좋아해줘서 기뻐한다고 노래한다. 정말 연애나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내 옆에서 풋풋한 여자 아이로 있을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어린신부>와 <댄서의 순정>을 보며 문근영에 열광했는가. 지난 몇 년간 여가수들이 노골적인 섹시함으로 성적 환타지를 자극했다면, 원더걸스는 ’연애 환타지‘를 사정없이 자극한다. 그러니 남자들이 따라할 수 밖에.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여동생이 오빠 앞에서 같이 놀자고 하는데 누군들 그걸 거부하겠는가. 이미 원더걸스가 춤과 노래의 부담감을 제거한 탓에 평소에는 무게 잡고 있어야 하는 남자들도 쉽게 동참한다. 여동생이라잖아. 여자들 역시 원더걸스가 ’Tell me'를 유혹하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노래, 그리고 남자들 앞에서 보여준다 해도 부담없는 노래로 즐길 수 있다. 원더걸스가 ‘Tell me'의 라이브에서 종종 불안한 모습을 보여줘도 그것이 큰 논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있다. 지금 원더걸스에게 기대하는 건 화려한 춤과 엄청난 노래실력이 아니다. 원더걸스의 오빠들은 그들이 오히려 약간 어설프게, 그래도 해맑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뿐이다.


박진영식의 승부


 박진영의 존재가 중요한 것은 이 지점부터다.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한가지는 박진영이 한국에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환타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 가장 능한 뮤지션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박진영은 박지윤의 ’성인식‘, 아이비의 ’오늘 밤 일‘ 등으로 남성의 성적 환타지를 자극할만큼 자극하는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자들이 어린 소녀에게 느끼는 어떤 매력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박진영은 단 한 곡의 노래로 매우 구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만약 ’Tell me'가 다른 기획사에서 만들어졌다면 ‘쌈마이’ 느낌이 확실히 나는 세미 트롯 스타일의 노래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진영은 도입부에 뿅뿅거리는 전자음으로 즐겁고 가벼운 분위기를 만드는 동시에 그 밑에 매우 충실하게 다양한 톤의 리듬 프로그래밍을 겹겹이 쌓아놨다. 그 리듬만을 듣다보면 ‘Tell me'는 굉장히 탄탄하게 만들어진 투스텝 곡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킥 드럼의 톤을 잡은 리듬 프로그래밍은 묵직하게 곡의 중심을 잡아주고, 그 위에 클랩과 스내어의 톤으로 층층이 쌓인 리듬 프로그래밍은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그저 전자음과 멜로디만이라면 ’Tell me'는 지나치게 가볍고, 더불어 춤을 추기 보다는 장윤정의 ‘어머나’처럼 ‘Tell me, Tell me'하며 박수나 쳐야 겠지만, 리듬 프로그래밍이 곡을 탄탄하게 채우면서 그 리듬에 따라 쉴 새 없이 춤을 출 수 있는 노래가 된다. 노골적인 섹시함을 드러낸 곡의 컨셉은 소녀들에 의해 발랄하고 귀여운 느낌으로 중화되고, 대놓고 놀자는 노래의 멜로디는 탄탄한 편곡에 의해 너무 ’쌈마이‘로 빠지지 않을만큼 중심을 잡아준다. 대중들은 ’Tell me'를 들으면서 섹시함과 애교, 귀여움을 모두 즐길 수 있으면서도 부담없이 즐긴다.

 그러나, 보다 크게 봤을 때 박진영의 가장 큰 가치는 작곡가로서의 위치가 아니다. 박진영은 JYP의 실질적인 선장이고, 작곡가이자 댄서다. 박진영이 매니지먼트만을 담당했다면 ‘Tell me'같은 노래를 만들 수 없고, 반대로 작곡가일 뿐이었다면 원더걸스같은 소녀 그룹에 그 곡을 줄 수도 없으며, 댄서가 아니었다면 원더걸스에게 그런 춤을 추게 할 수 없다. 그래서 ’Tell me'는 자신의 곡 하나로 회사 자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그리고 그걸 믿고 미국까지 갈 수 있는 박진영의 성향이 이뤄낸 성공의 최대치다. god와 비가 톱스타가 된 것은 박진영의 곡 뿐만 아니라 각자 ‘육아일기’와 드라마라는 외부적인 요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Tell me'는 기획자/작곡가/댄서인 박진영의 능력만으로 이만큼의 성공을 이뤄냈다.


소녀의 시대를 만들려는 SM


 이는 반대로 이수만이 소녀시대 같은 그룹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창작력을 100% 확신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작곡가의 역할이 회사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박진영은 원더걸스에게 스쿨룩의 ‘아이러니’에 이어 마치 인형놀이하듯 레트로 컨셉의 옷을 줄 수 있다. 기획자/댄서/작곡가의 역량을 결합한 자신의 곡이 한 번 성공하면 상종가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수만은 철저한 사업가다. 그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동방신기나 슈퍼쥬니어를 한국과 중국 버전으로 나누어 만들 수도 있고, 고아라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백상 예술대상에서 섹시 댄스를 추게 할 수도 있다. 가수의 이미지나 곡의 완성도는 2차적인 요소다. 중요한 건 SM에 소속된 연예인들이 얼마나 큰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수만에게는 소속 연예인들이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하고, 그런 시장을 만들 수 있는 프로모션이 우선시 된다. 슈퍼쥬니어와 소녀시대는 ‘SM'이라는 브랜드와 연습생 시절부터 만들어진 팬덤의 적극적인 자체 홍보를 통해 그들이 어떤 곡을 들고 나오기 전에 이미 관심의 대상이 됐다. SM은 그렇게 소속 연예인들을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올려놓고, 그룹을 중심으로 계속 멤버들의 얼굴을 알리고,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특히 소녀시대는 UCC를 통해 한 명 한 명의 멤버가 소개됐고, 그 때마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기사가 나왔다. 멤버 중 한 명인 윤아는 소녀시대로 활동하기 전 MBC <9회말 2아웃>에 나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렸고, 이미 인터넷 팬 카페를 통해 만들어진 소녀시대의 팬덤은 멤버들의 사진을 이곳저곳에 올렸다. 소녀시대는 노래를 들고 나오기 전부터 소녀들의 ‘시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공언한 그룹이었던 셈이다.


 소녀시대에게 필요한 건 당장의 히트가 아니라 그들이 정말 ‘대세’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컨셉이었다. 원더걸스는 박진영의 감각에 따라 얼마든지 컨셉이 바뀔 수 있지만, 이미 프로모션 과정부터 SM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소녀 그룹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소녀시대가 선택할 수 있는 컨셉은 한정 돼 있다. ‘아이러니’나 ‘Tell me'나, 원더걸스의 뮤직비디오는 발랄하게 놀고 싶어하는 소녀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웃을 때도 활짝 웃고, 멤버들끼리 계속 웃고 떠든다. 하지만 소녀시대의 멤버들은 ’다시만난 세계‘의 뮤직비디오에서 각자의 공간에 있으면서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비행기를 통해 하늘로 날고 싶은 소녀들의 꿈을 보여준다. 다소곳하고,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 속에는 하늘로 날라가고 싶은 꿈을 가진 소녀들. 소녀시대가 각각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은 원더걸스와 달리 치어리더, 혹은 테니스 선수 같은 옷을 단체로 맞춰 입은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들은 그렇게 단체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차별화된 그룹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동시에 건강하고 순수한 느낌을 가진 소녀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원더걸스가 나에게 다가오고, 쉽게 농담을 할 수 있는 편하고 귀여운 소녀들이라면 소녀시대는 새침하고 도도하게 교실 한 곳에 앉아있는 학교 반장들만 따로 모아놓은 엘리트 소녀들의 특징을 가졌다. <9회말 2아웃>에서 윤아가 연기한 것처럼, 어른들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머리와 재능을 가진 소녀들인 셈이다.


발차기를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소녀들의 꿈


 ‘Tell me'가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과 달리 ’다시만난 세계‘는 소녀들의 꿈을 그린다. 물론 ’눈을 감고 느껴봐 움직이는 마음 너를 향한 내 눈빛을‘처럼 사랑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가사가 있지만, ’다시만난 세계‘의 정서는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눈 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나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같은 부분에 핵심이 있다. 그게 사랑이든 미래의 일에 대한 희망이든, 그들은 지금 간절히 바라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위해 벽을 뛰어 넘으려 한다. 이루고 싶지만 아직 닿지 않은 꿈을 보는 소녀들의 의지와 절실함이 ’다시만난 세계‘에 베어 있다.


 이는 켄지가 작곡한 멜로디에 의해 보다 구체화 된다. 'Tell me'가 철저하게 분절적인 노래라면, ‘다시 만난 세계’는 요즘 노래들 중 드물게 완벽한 기승전결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Tell me'는 모든 부분에서 계속 임팩트를 준다. ’너도 날 좋아할 줄 몰랐어‘같은 도입부부터 음절마다 강세를 주고, ’어머나‘처럼 곡의 흐름을 갑자기 조절하면서 또 한 번 악센트를 주며, 후렴구인 ’텔 미 텔 미...‘는 그 부분만 무한 반복하며 따라부를 수도 있다. 그래서 ’Tell me'는 어느 부분이든 주목하게 되면 기억에도 쉽게 남고, 따라부르기도 쉽다. 반면 ‘다시 만난 세계’는 한 부분만 들으면 이 곡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느낄 수 없다. 이 노래는 시작부터 끝까지 멜로디가 이어지면서 감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전해주고 싶어 슬픈 시간이 /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같은 도입부에서도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에서 음정을 높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메임의 끝 /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에서는 멤버 전체가 노래에 참여하면서 스케일을 키우는 동시에, 멜로디 역시 더욱 고조되면서 클라이막스를 달성한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혹은 자신의 꿈에) 다가서지 못한채 눈빛만 보내던 소녀가 거친 길과 높은 벽을 넘어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로 가기까지의 그 벅찬 과정처럼, ‘다시만난 세계’의 멜로디는 차분하고 연약한 소녀의 목소리가 강하고 힘있는 멜로디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정석적으로 밟는다. 후렴구를 즐겁게 따라부르면 되는 ‘Tell me'의 마지막은 후렴구의 반복이지만, 멜로디가 스토리텔링을 하는 ’다시만난 세계‘는 마지막에 확실한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소녀시대가 ‘다시만난 세계’를 통해 그들의 구체적인 캐릭터를 얻는 것은 끊임없이 강하고 커지는 구성이 아니라 그 밑에 잔잔하게 베어있는 슬픔과, 그것을 딛고 올라가려는 ‘소녀의 의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만난 세계’의 소녀들의 힘과 의지는 어떤 어려움도 웃어 넘길 수 있는 강하고 튼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수없이 상처 입으면서도 ‘다시 만난 세계’를 위해 가겠다는 절절하고 슬픈 의지다. 곡의 후렴구인 ‘사랑해 널 이 느낌 그대로...’에서 이 곡의 멜로디는 계속 뻗어나가면서 절정에 도달하는 대신 ‘슬픔 이제 안녕’이나 ‘다시 만난 나의 세계’에서 음정이 낮아지면서 차분한 분위기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이는 이 노래를 부르는 소녀들의 목소리와 결합 돼 강하도 도도한 엘리트 소녀들의 뒤에 있는 소녀들의 절실한 눈물을 잡아낸다. 여린 목소리를 가진 소녀들이 계속 앞으로 나가지만 결국 ‘이렇게 까만 밤 홀로 느끼는’ 외로움 속에서 가지게 되는 슬픔 같은 것들.


무엇이든 다 잘하는 엘리트 소녀들


 그래서 ‘다시 만난 세계’의 매력이 최대로 올라가는 부분은 소녀들의 의지가 결국 벽을 뚫고 ‘다시 만난 세계’를 만나는 그 순간이다. 곡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여린 소녀들의 목소리를 쌓아나갔던 이 곡은 두 번째 후렴구에서 ‘....우리의’ 부분부터 음정을 높이기 시작하면서 그대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브릿지인 ‘이렇게 까만 밤...’부터 멤버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면서 고음을 내기 시작하고, 마지막 부분의 후렴구는 멤버들의 잔잔한 목소리 사이로 ‘반복되는’, ‘안녕’처럼 강하게 치고 들어가는 부분으로 파워풀하게 변한다. 기승전결에 따라 클라이막스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전개는 정석적이다. 그러나, 원래 후렴구의 멜로디와 그 뒤로 멤버들의 솔로가 들어가면서 잔잔한 코러스와 그것을 뚫고 나오는 보컬이 겹치는 순간은 소녀의 ‘절절한’ 의지를 극대화 시킨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래도 결국 웃으며, 그리고 앞으로 돌파하고 나가겠다는 의지. 원더걸스가 과거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따라하며 섹시하길 원했던 10대 미국 소녀와 다소 비슷한 느낌이 있다면, 소녀시대와 ‘다시만난 세계’가 구현하는 소녀의 모습은 일본 애니메이션 속의 우등생 소녀의 캐릭터에 가깝다.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어려움을 헤쳐나가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절실한 느낌을 가진 소녀들 말이다. 그건 어쩌면 SM의 엘리트 소녀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소녀들은 자연스럽게 지금 힘을 얻길 원하는 소녀들, 그리고 그 소녀들을 보며 두근거림과 안쓰러움, 혹은 동경같은 것을 가지는 남자들을 끌어들인다. ‘Tell me'가 지금같은 히트를 기록하는 가운데에서도 소녀시대가 원더걸스와 대립각을 이룰 정도로 나름의 시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소녀시대가 SM의 엘리트 소녀들로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확립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Tell me'가 세상을 휩쓸어도, 소녀시대의 팬들은 입으로는 생글 생글 웃으면서도 눈에서 ‘난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듯한, 심지어 시구까지 연습해서 김병현과 이치로의 폼을 흉내내는 그들을 거부할 수 없다.


 슬픔을 이겨낼 정도로 당차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다시만난 세계’속 소녀의 이미지는 안무를 통해 보다 구체화 된다. ‘다시 만난 세계’의 안무는 SM 여자 그룹 사상 가장 정교하고 가장 놀라운 수준으로 완성됐다. ‘다시만난 세계’의 안무의 특징은 동작 자체의 완성도가 아니라 9명의 소녀들이 그 동작들을 (신해철의 표현에 따르면) ‘단 1mm의 오차도 없이’ 춘다는데 있다. 게다가 ‘다시만난 세계’는 똑같이 그 춤을 출 뿐만 아니라 솔로 파트에 따라 쉴 새 없이 진형을 바꾸면서, 그것도 계속 스타일이 달라지는 춤을 소화해야 한다. 마지막 후렴구 부분에서 소녀시대는 좌우로 갈라졌다가 다시 모이고, 멤버들이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이동하며, 그 사이에 9명이 오차 없는 턴, 몸을 훑는 웨이브, 발차기,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보여주는 소녀스러운 몸짓 등 스타일이 전혀 다른 안무를 한꺼번에 소화한다. 그들이 아무리 무대 바깥에서 팬들을 기쁘게 만드는 개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해도, 소녀시대가 다리 굵기까지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멤버들이 고른 몸매와 예쁜 외모와 완벽한 군무를 보여주는 한 그들은 팬들에게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느낌을 줄 수 있다.


소희가 좋아요 윤아가 좋아요?


 그러나, 소녀시대의 꽉 짜인 안무와 그것을 정말로 소화해내는 소녀시대의 연습량은 곧 SM의 의외의 약점이기도 하다. ‘Tell me'는 빠른 리듬 프로그래밍의 전개와 모든 멜로디에 리듬을 타며 악센트를 주는 구성을 통해 누구나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거리고, 원더걸스가 춤을 추는 동안에도 리듬에 맞춰 계속 뛰어다녀야 하는 안무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소녀들의 여린 손짓에서 ’발차기‘로 끝나는 ’스토리‘를 가진 ’다시만난 세계‘의 안무는 멤버들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되 뛰지않고 걸어다녀야 한다. 그만큼 ’Tell me'는 듣는 사람들이 어디서건 그 리듬에 맞춰 신나게 뛰며 즐기지만, ‘다시만난 세계’는 그 춤의 스토리를 즐기면서 춤을 ‘감상’해야 한다. 그래서 원더걸스의 ‘Tell me'는 춤을 잘 추건 못 추건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따라출 수 있지만, ’다시만난 세계‘의 안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감상용‘이 된다. 그래서 ’Tell me'는 UCC를 통해 수많은 버전으로 재탄생 되면서 이 시간에도 퍼져나가지만, '다시만난 세계‘는 아이돌 소녀 그룹의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안무를 끝까지 보는 사람만이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차이는 두 그룹의 상반된 캐릭터가 가지는 시장의 크기로 이어진다.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귀여운 소녀들은 남녀노소에게 모두 통한다. 반면 소녀시대는 청순하면서도 도도하고, 당찬 소녀의 느낌을 좋아하는 대중에게는 어필하지만, 춤을 추는 것을 보면 가끔은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대중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건 국내에서 소녀시대같은 소녀들이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강력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폭 넓은 계층과 세대를 아우르는 주류 문화로 부상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소녀시대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리얼리티 쇼로 보다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안무를 널리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리얼리티 쇼 m.net <소녀 학교에 가다>는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돼 한정적인 시청자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요즘 가요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 역시 <소녀 학교에 가다>의 시청자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등 연습생들의 약점


 특히 소녀시대가 엄청난 연습량으로 완벽한 군무를 선보이는 SM의 엘리트들을 모았으면서도 그것을 받쳐주는 컨텐츠가 조금씩 ‘어설픈’ 구석을 보여준다는 건 큰 문제다. 물론 켄지의 곡은 뛰어나다.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과 비슷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다시만난 세계’처럼 소녀시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녀들의 당찬 이미지와 그에 깔린 여린 소녀의 모습을 동시에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켄지는 처음부터 대세가 돼야 했던 엘리트 소녀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들었다. 하지만 편곡은 다르다. 락적인 느낌을 가진 곡을 일렉트릭 기타를 제외한 모든 사운드를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이하 드럼 및 베이스라고 표현하는 것들은 모두 리듬 프로그래밍으로 비슷한 톤을 만든 것들이다), ’다시만난 세계‘의 사운드의 톤과 믹싱은 멜로디의 매력을 살리기는 커녕 크게 깎아 먹는다. 디스토션을 건 기타와 리버브를 잔뜩 준 보컬, 그리고 베이스는 모두 서로 퍼지고 울려서 보컬을 파묻어 버린다. 또 사운드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스내어 드럼은 무겁게 자리를 잡는 대신 거의 ’딱딱‘거리는 수준이어서 곡을 빈약하게 만들고, 반대로 베이스는 가장 굵은 줄의 경우 벙벙거리면서 곡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아주 가볍거나, 아주 무겁고 크게 울리거나. ’다시만난 세계‘의 가장 큰 매력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섬세한 감수성과, 그에 대비되는 다이내믹한 후반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편곡이 작곡을 배신했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사운드에 관한 견해는 스튜디오에 준하는 모니터 시스템에서 듣고 쓰는 것이니 '우리집 컴퓨터로 들으면 괜찮다’는 반론은 사양). ‘Tell me'가 ’쌈마이‘가 될 수도 있었던 곡을 박진영의 고급스러운 사운드로 포장한 것과 달리, ’다시만난 세계‘는 좋은 세션과 좋은 엔지니어를 투입해서 최대한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꾸며도 모자랄 판에 조악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물론 켄지 정도의 작곡가가 편곡의 문제를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최소 투자로 최대 효율을 뽑는 SM의 사업방향 탓이다. 박진영이 스스로 작편곡을 하는 JYP는 곡의 퀄리티가 곧 박진영의 명예가 되기에 허술할 수 없지만, 수익이 우선인 SM은 동방신기 2집에서 이미 그 해 한국의 메이저 인기가수들 중 가장 조악한 수준의 레코딩을 뻔뻔스럽게 내놓은 바 있다.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면 컨텐츠의 완성도는 망가뜨릴 수도 있는 것이 SM이다. 특히 ‘다시 만난 세계’에서 효연이 춤을 추는 브릿지는 효연을 소개하는데는 필요하지만, 곡 자체로서는 다르게 바꿔야 했을 부분이다. ‘다시만난 세계’는 서서히 감정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웃음을 머금은 소녀들의 군무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브릿지가 끼어들면서 서서히 올라갔던 곡의 감정은 끊어지고, 군무의 흐름과 달리 강렬한 느낌을 바탕에 둔 효연의 춤은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멤버를 부각시키려는 ‘SM스러운’ 전략이 곡을 망치는 셈이다.


 물론, 그래도 SM은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SM의 계획대로였다면, 소녀시대는 지금쯤 아이돌 그룹의 독보적인 소녀 그룹이 됐어야 했다.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를 지배하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SM은 늘 열광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꾸준히 그들에게 관련 상품을 소비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열광적인 팬덤은 가요계가 활황이었던 시절에는 HOT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고, 반대로 지금처럼 가요계가 불황일 때도 확실한 팬덤을 통해  아이돌 그룹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무수한 아이돌 그룹이 있지만, 방송에서 아이돌 그룹의 예를 들 때 늘 동방신기와 슈퍼쥬니어를 먼저 거론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시장이 커지건 작아지건, 아이돌 그룹하면 SM이고, SM의 아이돌 그룹들은 아이돌 그룹을 대표할 만큼 자기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대표성은 SM 소속 그룹의 멤버들이 개별 활동을 하거나, 어떤 활동에서도 주목을 끌 수 있는 메리트를 준다.


 소녀시대 역시 뚜렷한 팬층을 바탕으로 음반 판매량이나 가요계 전체에서의 비중과 별개로 여성 아이돌 그룹의 대표가 되면 그것으로 목표의 절반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건 원더걸스처럼 여성 아이돌 그룹은 물론 다른 팬층까지 끌어들이는 그룹이 없을 때의 얘기다. 음원을 통해 팬덤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기를 얻는 그룹이 나오면, 시장 크기에 관계없이 아이돌 그룹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노리는 SM의 전략은 흔들린다. 이는 빅뱅이 팬덤에 대한 집중적인 공략대신 ‘거짓말’의 폭 넓은 히트로 순식간에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과 비슷하다. SM은 마치 프로그래밍처럼 자신들의 계획대로 움직였고, 그만큼의 성과를 거뒀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처하지는 못했다. 반면 JYP는 박진영이 모두가 무모한 시도라고 했던 미국 진출을 자신감 하나로 개척했듯, 요즘 시장에서 쉽지 않은 범 대중적인 히트곡으로 아이돌 그룹을 다시 대중 속으로 파고들게 했다.


놀 줄 아는 개척자와 냉정한 사업가의 차이


 특히 두 회사의 UCC 홍보는 SM과 JYP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SM의 입장에서 UCC는 자신들의 멤버를 소개하기 위한 전초전이자, 자신들의 팬을 결속하기 위한 수단이다. 팬들이 UCC를 통해 멤버들을 보고, 그것이 팬들에 의해 퍼져 나가면서 하나씩 소녀시대의 팬이 늘어난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공식적인 무대는 역시 공중파와 케이블 TV를 통한 매스미디어에 의해 이뤄진다. 반면 JYP는 ‘Tell me' 자체를 UCC를 통해 홍보했다. 박진영이 어느 정도까지 고려한 것은 모르겠지만, 그가 춘 'Tell me' 안무를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공개한 것은 그 자체가 대중에게 ’Tell me'의 놀이법을 알려준 홍보였다. 그 반복성과 접근의 용이성으로 인해 인터넷에서 서서히 퍼져나가던 ‘Tell me'안무는 박진영의 UCC를 통해 수면위로 떠오를 수 있었고, ’Tell me'는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히트 상품이 됐고, 더불어 음원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 컨텐츠가 어떤 경로로 사람들에게 전파되는지 드러나게 했다. 그동안 가능성만 제기됐을 뿐 상징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UCC가 드디어 가요 산업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 안정적인 프로모션과 수익을 쫓는 SM은 UCC로 멤버들을 소개할 수는 있어도 ‘다시만난 세계’의 매력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만약 SM이 ‘다시만난 세계’의 안무를 보는 재미를 알려줄 수 있는 UCC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특히 ‘다시만난 세계’의 뮤직비디오가 노래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소녀의 여린 감성과 의지를 동시에 담아내고, 멜로디 자체가 기승전결을 충실히 따르는 ‘다시만난 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멤버 각자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캐릭터가 드러난 뒤 비행기를 날리든 춤을 추든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이 정석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SM은 효연이 춤을 추기 위해 몸을 풀고, 브릿지에서 혼자 있는 공간에서 춤을 추는 것 외엔 그런 전개를 보여주지 못하고 무난한 수준에서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으로 머물렀다. '다시만난 세계‘속에서 소녀시대가 획득한 캐릭터의 매력을 충실히 담아낸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UCC로 퍼뜨렸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Wonder Years가 시작됐다


 그러나,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SM과 JYP 중 누가 지금 성공했다고 속단하기엔 이르다. 물론 지금 당장을 따진다면 원더걸스와 ‘Tell me'의 확실한 우세다. 그러나, 박진영의 곡에 따라 계속 컨셉이 바뀌는 원더걸스는 본인들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히거나, 자신들의 실력을 포장하기 어렵다. 원더걸스가 ’Tell me'를 통해 생긴 매력적인 소녀들의 이미지를 어떻게 유지하면서 거기에 박진영과 그의 음원 제작팀이 만드는 곡을 융화시키느냐가 앞으로 원더걸스의 관건이다. 소희가 ‘국민 여동생’이 됐는데 바로 다음에 터프한 스타일로 변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반대로 SM은 원더걸스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뚜렷한 라이벌 구도를 마련할 수 있는 인기 컨텐츠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승철의 ‘소녀시대’ 리메이크를 하는 것이 그 답이 될 수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컨텐츠를 만든다면 소녀시대는 팬덤의 지원과 그들이 ‘다시만난 세계’에서 보여준 서늘할 정도의 실력을 통해 탄탄한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시합은 벌어졌고, 1라운드의 결과는 사람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다. 과연 늘 아이돌의 대세를 자처했던 회사와, 필요하다면 미국에서라도 사람을 데려오는 회사의 소녀들은 마지막에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




아무래도 작년10월 글이다 보니 당시는 원걸 손을 들어주셨지만 뭐 지금 다시 쓰신다면 다를 거라고 봅니다.(아무래도 지금은 소녀들이 +,+)

뭐 시기나 대결구도 그런걸 제치고더라도 한번 쯤은 읽어볼만한 글인것 같습니다.
정말 두그룹을 정확히 분석해주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