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The First Mini Album - Gee : 마성의 '지지배배'
at the Chris



어라, SM 왜 이러지? SM 음악팀 탄탄한 것 잘 알고, 음반 만들 때 나름의 원칙이 확고부동한 회사인 것도 잘 알고, SM의 소속 뮤지션들 상당수가, 가요씬 평균치를 넘어서는 가창력을 넘어서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고 봐도, 심지어 지난해 샤이니의 상큼한 데뷔와 동방신기의 놀라운 성취를 잘 알고 있는데도, 이건 좀 충격적이다.


소녀시대도 소녀시대지만 SM A&R팀은 어디서 보약이라도 지어먹은걸까. 얼마전 관련 기사 각주로도 남겼지만, 소녀시대는 '귀여운 이미지의 걸그룹'에게 딱 들어맞는 정답같은 음악들을 내온 팀이다. 그런데 이전 음악들이 객관식형 정답이었다면, 이번 답안은 주관식형 정답이다.


더군다나 귀염성있는 이미지로 갈 때에는, 그만그만한 선에서 음악의 강도가 제한되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대단히 영리하게도 그 제한선을 살금 살금 넘어서서, 새로운 시도에 가창력 자랑까지 곁들였다.


사실 'Gee'를 완곡으로 들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쓸 거리들은 많았다. 이놈의(죄송!) '지지지지!'가 도무지 귓전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종달새 마냥 지지배배거리는 소녀들의 코러스는 은근 슬쩍 강력했다. 이 '중독성있는 후렴구'만으로도 거뜬히 타이틀곡 노릇을 할 것 같은 노래인데, 중반부를 넘어서면 슬며시 곡의 흐름을 전환시키면서, 나름의 기승전결까지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를 타고, 그간 한결 탄탄해진 제시카와 태연의 보컬이 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앨범이 공개되고보니, 타이틀곡은 단지 서두에 불과했다. 경쾌한 팝락 넘버인 '힘 내!'가 스프링처럼 팡 튀어나온다. 소녀들 모두 모나지 않은 안정적인 소리를 들려주는데, 역시 더블 리드 역할을 하는 제시카와 태연의 소리는 정말 눈이 번쩍 뜨인다(이 두 사람의 리드는 전곡에 걸쳐서 대단히 안정적이고 효과적이다).


제시카와 태연, 그리고 티파니는 소녀시대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개성있는 목소리와 가창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멤버들이다. 초기에 아쉬웠던 부분(초기엔 당연히 아쉬운 부분이다)은 이들의 뒷심이 좀 딸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SM 보컬 시스템의 강점이 바로 '뒷심'이 상당히 센 가수들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엄청난 고난이도의 넘버들을 소속사 신인들이 소화해내도록 주문한다. 그 과정에서 청자들에게 '듣기 싫다'는 욕도 듣지만, 결국 그 담금질을 통해서 상당수의 소년 소녀들이 단련된다. 소녀시대는 그런 과정을 공개적으로 겪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활동 휴지기 동안에, 이들은 부지런히 트레이닝을 받았나보다. 거기다 태연은 라디오 프로그램 라이브 코너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노래들을 부르며, 목소리를 착실히 성장시켜 왔다. 태연은 '뒷심'만 키우면,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 깜짝 놀랄 수준의 테크니컬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들의 '새로운 소리'가 이 두번째 트랙에 들어 있었다. 제시카와 태연의, 힘이 실린 소리들은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연이어 등장하는 팝발라드 Dear Mom이나 소녀들의 목소리를 감각적으로 비틀어낸 일렉트로닉팝 Destiny도 좋다. 전체 음반의 컨셉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다양성까지 담아낸다. 살짝 R&B톤을 가미한 마지막곡 '힘들어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이전 소녀시대 곡들의 흐름을 잇는 것 같으면서도, 예전보다는 좀 더 큰 스케일을 보여주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착한 가사들이 좀 많지만, 이 예쁜 시기에 이런 곡들을 부르지 않으면 언제 부르겠는가. 그래서 듣기 편하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지난 정규 음반보다 소녀들이 한발짝 앞으로 걸어나온 기분이다. 소녀들의 소리가 더욱 분명히 들리고,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면서도 앙상블은 지난 앨범보다 훨씬 좋아졌다.


걸그룹의 경우, 음역대가 많이 겹치기 때문에 좋은 앙상블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선 전체적인 소리의 균형이 상당히 돋보인다. 리더격 보컬들이 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그들이 서 있는 지점이 좋아서 소리가 튀지 않는다. 신기하다. '그룹의 보컬 포메이션'을 조율하는데에 있어서, SM과 그 소속 가수들은 가히 나름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끝끝내 균형잡힌 앙상블을 이뤄내는데 실패하는 여성 그룹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음반을 감상하고 나서야, Gee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난 사실 가수들의 패션에는 상당히 무덤덤한 편이다. 그렇지만 이건 - 너무 예쁘지 않은가. 저 소녀들의 모습에 넋을 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국내든, 국외든 말이다. 마성의 소녀들, 동시에 '마성의 연출력'이기도 하다. 더 할 말이 없다. 멋진 무대를 기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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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니아 : 음악계에서 현장경험을 가지신 전직기자분들이 모이신 대중문화 웹진으로써 인터뷰와 현장취재를 하시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