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Break the ice
Dec 1, 2011 / Vol.10

퍼 트리밍 장식의 케이프 코트 커밍 스텝. 화이트 칼라 장식의 원피스 산드로. 블랙 헤어밴드 블랙 뮤즈.

소녀시대의 차가운 ‘얼음공주’ 제시카가 조금씩 얼음을 깨고 나온다. 마음은 열려 있지만 아직은 조금 차다. 그녀의 말대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맛’, 그게 바로 제시카의 매력이니까.

아홉 명의 멤버가 팀을 이루면 각자의 역할은 솔로일 때보다 1/9만큼 줄어든다. 그리고 팬들은 그만큼 멤버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접하기가 어렵다. 스튜디오에 편안한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달랑 혼자 들어오는 제시카가 반가웠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룹에 묻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녀만의 매력을 오늘 온전히 만끽할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저는 인터뷰 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어서, 개인적으로 하는 인터뷰가 있으면 팬들이 더 유심히 챙겨 보고 반가워하세요.”
그녀에 대해 아는 정보라면 익히 들어왔던 ‘얼음공주’ 정도다. 표정에 변화가 없고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차가워 보인다고 해서 생긴 별명. 데뷔 초에는 예의가 없다, 성격이 안 좋다, 왕따를 당한다 등등 수많은 오해와 루머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오히려 꽃처럼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여자 아이돌계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부상한 그녀 아닌가. “원래 저는 감정 표현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어요. 좋을 때나 싫을 때의 표정이 비슷할 뿐이지, 화가 났다거나 기분이 안 좋은 건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 소녀시대 활동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점점 감정 표현이 늘더라고요. 이젠 웃긴 일이 있으면 뒤로 까르르하고 넘어가요.” 그래도 여전히 얼음공주는 얼음공주다. 호불호가 뚜렷하고,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실 저는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싫지만은 않아요. 나쁘게 보면 도도하고 차갑다는 얘기지만, 그래도 여자는 약간 다가서기에 어려운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최근 소녀시대는 앨범 <The Boy>로 새로운 활동에 들어갔다. 이 앨범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 지역에 동시 발매되는 월드 와이드 앨범으로, 세계 무대에서의 소녀시대 활동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앨범 발매 초기에는 미국에도 잠깐 다녀왔었고, 엊그제는 중국에도 다녀왔어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 촬영장으로 온 거예요. 그리고 아시아 투어도 현재 진행 중이어서, 투어 준비와 활동을 동시에 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렇게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소녀시대의 신곡은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와 함께 작업한 ‘The Boys’다. 제목은 ‘남자들’이지만 이제 곧 그들을 제치고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걸스 파워에 대한 노래로, 지금까지 밝고 사랑스러웠던 소녀시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파워풀한 변신이다. “사실 저희가 워낙 변신에 두려움이 없고 그걸 즐기는 편인데, 처음 노래 들었을 때 저희도 굉장히 놀랐어요. 하지만 소녀시대도 한살 한살 나이를 먹다 보니 이런 곡도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죠.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승부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깜찍한 유니폼을 입고 나와 당돌하게 발차기 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소녀시대도 어느새 다양한 변신을 능수능란하게 할 만큼 성장했다. 소녀시대와 함께 성장해 온 제시카의 나이도 이제 내년이면 스물넷. 보기에 따라 한없이 어린 나이기도 하고, 어쩌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기도 하다. “아마 소녀시대를 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공부하고 있겠죠. 요즘은 평범하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해요. 물론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하지만요. 친구들은 이제 졸업해서 직장을 가져야 할 때인데, 저는 제 일이 있고 지금까지 활동하며 이뤄놓은 것들이 있으니까요.” 물론 소녀시대로서, 또 제시카로서 그녀가 이루어놓은 것들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것들은 아니다. “사실 저는 미래의 큰 꿈을 계획하면서 살기보다, 현재에 충실한 타입이거든요. 바로 앞의 작은 목표들에 집중하면서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편이에요. 소녀시대로 처음 데뷔했을 때도 당장 무대 위에서 잘하고 싶었고, 순위 프로그램의 1위를 하고 싶었고, 인기가수상을 받고 싶었고, 그 후엔 대상을 받고 해외도 진출하고 싶었고 …, 뭐 그런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왔던 것 같아요.” 욕심의 끝이 어디 있고, 올라갈 수 없는 한계가 어디 있겠냐만은 이 정도면 한 그룹으로서 이룰 만큼 이룬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제시카라는 한 사람이 가진 개인적인 목표에도 귀를 기울여봐야 하지 않을까?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를 조금 더 한 뒤에 패션 비즈니스 계통에서 일해 보고 싶어요. 이렇게 패션 화보 찍는 일도 너무 재미있어요. 다양한 옷을 직접 입어보는 게 정말 큰 공부가 되는 것 같거든요. 오늘도 하나 배워가려는 마음으로 왔어요. 그리고 동시에 제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즐겁고요. 기존에 제가 늘 하던 일과는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즐거움도 찾아보고 싶어요.”
이렇게 제시카는 젊은 나이임에도 공인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의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가히 수준급이다. 그런 그녀에게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해 주는 친구가 생겼다. 바로 그녀의 동생이자 그룹 f(x)의 멤버로 활약 중인 크리스탈. “어렸을 때는 사실 동생이 귀찮았죠(웃음). 언니인 내가 입는 옷과 하는 행동을 뭐든 다 따라 하는 동생이었거든요(웃음). 지금은 일적인 부분에서도 제가 하는 것을 많이 보고 배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가 더 조심스럽고, 동생을 보호하고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또 한편으로는 동생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니까 든든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그녀가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은 비단 동생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소녀시대의 활동을 보며 힘을 낸다는 팬들이 많아져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 팬들을 만나고, 또 그런 사실들을 피부로 느끼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죠.”
쉬는 날엔 꼼짝하지 않고 침대 위에서 뒹구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제시카. 그녀의 가까운 미래 계획은 바로 ‘행복한 가정’이다. 스물다섯쯤에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는 이 조숙한 꿈을 어찌하랴.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꿈일 뿐, 소녀시대와 함께하는 미래는 여전할 것이다. “아마 소녀시대는 계속 함께하면서 각자의 방향을 찾아나가지 않을까요?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음반을 낼 수도 있고, 연기나 예능·뮤지컬 같은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기도 하면서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소녀들은 이제 숙녀가 되었고, 도도한 얼음공주였던 제시카도 조금씩 능청이 늘어간다. 그래도 이제 20대 중반인데 소녀시대가 언제까지 ‘소녀’일 수 없지 않겠냐고 짓궂게 물었더니, 금세 차가운 얼음공주의 본색을 드러낸다. “어머, 언니! 그래도 소녀 감성은 계속 남아 있거든요.” 순간 차가운 바람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드는데, 그 새침하고 소녀 같은 모습에 마음이 놓이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