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 중앙일보

 

이번에 만난 사람은 '소녀시대'다. 걸출한 연예기획자 이수만이 '보아' 이후 야심차게 내놓은 아이돌 그룹이다.
연예인 인터뷰는 정치인 인터뷰보다 어렵다. 조용필·안성기와 같이 일가를 이룬 사람이 아니고서는 엄격한 자기검열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관대하지 않다. 한마디의 말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더구나 인기정상의 아이돌 그룹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래서 오늘 답변도 누구의 대답인지 구체적인 이름을 따로 지칭하지 않았다). 때문에 대중이 인터뷰를 통해 연예인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대답은 고작해야 ‘방귀는 뀌는가?' '만약 뀐다면 냄새는 나는가?’의 수준에서 맴돌게 된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인터뷰는 실패다.

1. 인트로

- (청담동의 한 감각적인 카페에서 7명의 멤버를 만났다 도저히 한 자리에 모두 모을 수 없다는 매니저가 그나마 일정을 쥐어짠 결과다. 요즘 스케줄이 가장 바쁘다는 윤아와 티파니는 결국 따로 따로 만나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7인 1색의 인사였다. 날아갈 듯 예쁜 목소리들이었지만, 마치 악보를 두고 화음을 조율하듯 일체감이 느껴졌다. 카페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순간 이쪽으로 쏠리고, 여기저기서 폰카가 올라왔다.)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오늘 인터뷰를 할 아저씨에요, 혹시 저를 아시는 분 계세요.

“네… '뉴 하트' 원작자 아저씨요.”

(지휘봉을 따라 입술이 움직였다. 절대 연습문제를 풀고 오면 안 된다고 매니저에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투자 평론가요'라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편견일까? 왠지 아이들이 아이들 같지 않았다. 편견을 걷어내고자 기획한 인터뷰에서 인터뷰어의 눈에 편견이 끼면 인터뷰는 하나마나다.)

- (아이들의 눈에서는 또래에서 찾을 수 있는 호기심이나 천진난만함을 쉽게 발견 할 수 없었다.)
미리 말씀 드리죠. 이 인터뷰는 연예 인터뷰가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에게 별로 관심 없거나, 혹은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어른들에게 여러분의 진짜 모습을 이해시키고 싶어요. 어쩌면 앞으로 여러분이 연예활동을 하는 동안 이런 얘기를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지 몰라요. 우리 소개부터 먼저 할까요?

“유리요, 효연이요, 제시카, 태연, 수영, 서현, 써니예요.”

- (일부러 노트를 꺼내지 않았다. 권혁재 기자가 잔뜩 긴장한 매니저를 순간적으로 포착한 사진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까르르 웃음이 터지며 얼굴이 풀리기 시작했다. 순간 순간 드러나는 아이들의 모습과, 가지런히 다리를 모으고 미스코리아식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이들의 진짜에 가까운 모습일까 호기심이 들었다.)
우리 데뷔할 때 얘기부터 해 볼까요? 기분이 어땠어요?

“설레고, 두근거리고, 심장이 간질거렸어요. 내 노래와 춤, 끼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전날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왔어요. 쇼케이스에서 끼를 보여주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 (“눈앞이 하얘졌어요”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와 같은 예상 답변이 빗나갔다.)
그렇게 가수가 되고 나서 인기를 얻고, 이젠 최고가 되었는데. 여러분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자부심은 어떤 거죠? 이제는 노래 뿐 아니라 연기나 DJ를 하는 친구도 있잖아요?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것에 거부감이 클 거예요. 하지만 학교가면 수학과 영어를 다 잘하는 아이가 있잖아요. 그렇게 봐주면 안 되나요? 아티스트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기에는 저희들은 아직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우리는 각자 다른 꿈들이 있어요.

(우선 그들의 당당함에 놀랐다. “최고의 가수로서 인정받고 싶어요”와 같은 모범답안이 또 다시 빗나간 것이다. 영어와 수학을 같이 잘하는 아이, 이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2. 탄생

- 몇 살 때부터 시작했어요? 견딜만하던가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어요, 허황된 꿈이었죠. 보아 언니를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이미 끼가 있었던 거죠. 시작만하면 당장 그렇게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다치죠, 많이 아프고, 그러면서 굳은살이 배기죠. 애착이 생기고, 나중에는 집착이 생겨요, 이를 악물고 이루겠다는…” “힘이 안 들면 거짓말이죠. 슬럼프에 빠지고, 그때마다 울고, 서로 위로하고, 억지로 참죠” “처음에는 신기했죠. 연예인이 되는 연습을 한다는 게 그저 신났어요.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춤추면서 발이 너무 아팠어요. 그때 고통이라는 걸 배우는 거죠…”


- (‘사육된 아이들’ ‘박제된 인형’. 이들을 고깝게 보는 시각이다. 보아 역시 그랬다. 한창 학교에서 공부 해야 할 아이들이 연예기획사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한 켠에 분명히 있다. 아프겠지만 이 인터뷰에서는 꼭 물어야만 하는 질문들이었다.)
그렇게 서로 경쟁하면 기분이 어때요? 친구를 이겨야 사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쉽게 꿈을 꾸죠, 하지만 부딪치고 배우고 연습하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죠. 그 중에 많은 아이들이 실망하고 떠나요. 회사에서 내보내는 아이들도 있고, 스스로 그만두는 아이도 있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어요. 이기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거라는 걸요” “서로 의지가 되죠. 이루겠다는 각오를 서로 심어주고 위로해요, 끈끈해지는 거죠. 그래도 힘들었어요” “저는 SM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캐스팅되어 왔는데, 그때 3-40명이 같이 왔어요, 도중에 나간 친구, 회사에서 금방 내보내는 친구, 그것을 보면서 회의가 들죠. 하지만 그래도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게 좋았어요.”

- (이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눈높이에 있었다. 아이들은 연습생시절 이미 경쟁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성숙해갔다. 애착, 이라는 말을 할 때 어린 소녀의 눈에서 이미 세상을 보아버린 처연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운동장을 뛰거나, 영어를 배우려고 비행기를 타는 다른 아이들과 뭐가 다를까.) 그래도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생존경쟁이 아닌가요?

“쟤를 끌어내려야 해, 그런 경쟁자가 아니라, 발전을 위해 욕심을 내는 거죠. 더 잘하는 아이보다 더 잘하려는 욕심 같은 거죠.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내가 올라가려는 거에요. 그런 욕심이 큰 친구들이 결국에는 자기만의 꿈을 이루죠. 나만 생각하고 앞을 보고 가야 해요.”

-(이 말이 과연 19살 소녀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일까? 조치훈 기성이나, 이창호 국수 수준의 입에서나 나올 말들을 아이들은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었다. 의심했다. 혹시나 기획사의 모범답안 아닐까? 하지만 내가 아이들의 완벽한 연기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의 눈은 지나치게 진지했다.)
문제는 어른들이 걱정하는 거죠. 교육받아야 할 시간에 춤과 노래만하면 나중에…

“사회생활에서 많이 배워요, 교실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많이 배우게 돼요. 연습실에서 교육받으면서 배우는 것도 크죠. 연습실도 작은 사회에요. 같은 목표를 가진 연습생들이 모인 학교 같은 공간인 셈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희들은 '애 어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다른 애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건 맞아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배우려고 하죠, 책도 읽고, 신문도 보고, 저희들, 정말 욕심이 많아요.”

- 그래도 어른들의 눈에는 제대로 영어 한마디라도 할까? 같은 의구심이 있거든요.

“쟤들이 제 이름자나 제대로 적을까?라는 건 연예인에 대한 시선은 고정관념일 뿐이에요. 우리는 꿈이 가수에요. 가수가 교수가 되려는 아이보다 인수분해를 못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꿈이 다르잖아요. 우리는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것이 공부에요. 누구나 꿈을 이루려고 공부하잖아요.”

- (이어 보여준 아이들의 회화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유창한 네이티브 수준이었다. 그것도 중국어와 영어로 말이다. 해외진출을 꿈꾸려면 외국어도 춤이나 노래만큼 중요하다. 회사에서 배운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쉽지는 않은가요? 다른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에 비해?

“잃어 버린 게 크죠. 학교생활이 그리워요. 누구나 다른 세계가 부럽듯 우리는 우리의 세계가 있고, 다른 아이들과는 세계가 달라요. 아이들이 즐기는 축제, 친구들과의 수다, 점심시간이 되면 밥 먹고 막 수다 떨고 놀잖아요. 그게 제일 그립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추억이 있어요” “제가 DJ를 했거든요. 청취자 사연을 읽어요” “그럼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만드는 슬프거나 기쁜 그런 예쁜 인연 같은 거요. 그때마다 슬펐어요” “아련하게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같은 느낌, 그런 기분이 들어요.”

-(다른 세계라고 했다. 내가 가진 것 외에 다른 것도 같이 가지려 하면 나쁘다고도 했다.)
소녀시대는 이미 분화되고 있죠. 이중에 잘나가는 친구들이 있고, 뒤쳐진 친구들이 있고요. 이때 기분이 어떤가요?

“각자의 시기와 때가 있어요. 저 친구는 시기가 빨리 오고, 나는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어요. 순서가 다를 뿐이에요. 시기 질투는 없어요. 응원하죠. 우리는 ‘덕분에’라는 말을 많이 해요. 먼저 앞에 서는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거죠. 어느 한 친구가 빠르면 나는 대신 천천히 기다릴 시간이 있다는데 감사하죠. 더 준비 할 수 있잖아요” “제가 앞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먼저 일 뿐이죠. 같은 차를 타고 간다면 누가 먼저 타는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 (교육의 힘일까? 이수만이라는 기획자가 노래와 춤을 가리키며 이 정도의 인성을 길러 놓았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너무 물정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소녀시대도 해체되지 않겠어요. SES나 핑클처럼요.

“언젠가 그런 시기가 오겠죠. 지금도 이미 재능에 따라 역할이 바뀌기 시작하고 있어요. 또 그게 아니더라도 커서 언젠가는 청순에서 섹시 컨셉트로 바뀔지도 모르죠. 또 누군가가 연기를 위해 떠날 수도, 또 누군가는 다른 목적으로 떠날 수 있어요. 그 때가서 '우리는 소녀시대잖아'라고 할 수는 없죠.”

- 만약 말이죠, 지금 할리우드에서 이중 한 사람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역할을 맡기고, 또 그 정도 금액의 전속계약 제안이 들어왔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저는 안 떠날 거 같아요. 왜냐하면 그건 소녀시대의 나를 보고 제안한 거지, 나 혼자를 보고 제안한 건 아닐 테니까요. 우린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어요. 소녀시대가 있어서 내가 있지, 아직은 나 하나가 따로 그 만큼 가지 못했어요.”

(다른 아이들의 반응도 그랬다.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는데, 다른 아이가 ‘나는 떠날게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들의 답변은 어지간한 정치인 뺨칠 수준이었다. 이수만의 SM은 이 친구들에게 '겸손' 이라는 가치를 상당한 무게로 주입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아이콘

오타쿠, '당신' '댁'이라는 뜻을 지닌 이인칭 대명사의 일본어다.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하여 집착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가지 일에 몰두하여 광기(狂氣)가 있다는 뜻으로 낚시광·바둑광·골프광 등의 말을 쓰는데, 그들보다 더욱 깊이 빠져들어 있는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부른다. 특정 분야에만 관심을 가져, 일반적 상식을 결여한 사람으로 보는 부정적 이미지도 지니고 있다. 한국 네티즌들은 이 말을 차용하여 ‘오덕후’로, 소녀시대 마니아들을 가리켜 ‘소덕후’라 부르기도 한다.

태연, 유리, 제시카, 써니, 태연, 효연, 서연, 티파니, 윤아. 당신이 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면, 또 그들의 데뷔 경로인 ‘한일 울트라 아이돌 듀오 오디션’ ‘SM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댄스짱’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노래짱’등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한 장 얻기 위해 그들이 모델로 나선 ‘**치킨’을 배달시킨 적이 있다면 당신은 진정 ‘소덕후’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 이제 불편한 얘기 좀 하죠. '소녀시대'라는 말이 정말 순수하다고 느끼세요? 청순을 가장한 섹시코드가 숨어있다고 보지는 않나요?

“최소한 우리가 만든 컨셉트는 아니에요. 그렇게 보는 분들도 있죠. 인터넷에 느끼한 글을 보면 아프죠. 하지만 우리는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힘이라고 생각해요. 성장의 이미지를 보여준 거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물론, 나이가 들면 달라지겠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우리를 달리 보는 건 그렇게 보는 분들의 문제죠. 왜 꼭 그렇게 보는 거죠? 우리는 아직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있지도 않는걸 억지로 그렇게 보는 게 오히려 문제 아닌가요?”
(하지만 정형화된 화장, 외과의사인 내 눈에 비친 지울 수 없는 성형의 흔적, 미니스커트, 앉음새에서 매무새까지, 이렇게 느껴지는 가공된 흔적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입혀진 ‘소녀’ 아닌 ‘숙녀’의 모습일 것이다.)

-요즘 쇠고기 수입반대 포스터에 ‘촛불소녀’라는 그림이 등장해요. 어린 소녀가 촛불을 안고 ‘지켜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죠. 소녀라는 말에는 이런 청순한 소녀가 먼저 떠오르는데, 과연 소녀시대의 소녀가 이런 소녀일까요?

“저희는 여리고, 착하고, 보호하고 싶은 소녀는 아니죠. 저희는 오히려 팬들을 즐겁게 해드리고 ‘힘내세요’라고 하는 소녀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보여주고 싶은 소녀는 가냘픈 소녀가 아니라, 발랄하고 청순한 그리고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친구 같은 소녀에요.”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질문이었다. 사실 그들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

-연예인들이 공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보여지는 사람들 이잖아요. 우리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을 보고 함께 하잖아요. 좋던 싫던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화제가 되고요. 그럼 영향이 있죠. 그게 공인이라면 공인이지요.”

- 요즘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요?

“용기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저희들은 발언을 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아는 건 아직 너무 적고, 판단할 능력이 없잖아요. 안다고 할 수도 없죠. 마음으로는 느끼지만, 아직 말은 두렵죠. 연예인이 아니라면 마구 하고 싶은 말들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저희가 너무 어려요.” (맞은편에 앉아 자리를 지키던 매니저의 얼굴이 일순 긴장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매니저의 수신호가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의 역할과 한계를 알고 있었다.)

4. 현실과 이상 사이

- 만약 친동생이 연예인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친동생이 한다면, 원하면 하라고 하겠어요. 한번 하고 싶으면, 또 하겠다고 일단 말할 정도면, 말려서는 안 돼요. 우선 스스로 겪어보고 경험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저니깐 할 수 있어요. 태어나기를 강하게 태어나야죠. 마음이 강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은 일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생각이 4:3 으로 쫙 갈라졌다. 이유는 제각각 달랐지만, 찬성하는 아이도 겪어보고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했고, 반대하는 측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했다. 특히 마음이 강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 경쟁상대인 원더걸스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텔 미로 인해서 여러분보다는 기성세대에는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소녀시대와 비슷한 경쟁자가 생긴 거죠. 서로 잘해야죠” “하지만 서로가 추구하는 컨셉트나 음악이 달라요” “서로 자극이 되죠. 더 잘해야 한다는.” (이거 너무 상투적인 얘기 아니냐, 진심을 얘기해보라는 말에 반격이 들어왔다.) “왜 속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우리가 인터뷰를 하면 기자 아저씨들이 그래요. ‘외우고 왔냐?’ ‘질투 안 나냐?’ ‘에이 말도 안돼’ 다들 이래요, 왜 저희 말을 믿지 않으시죠?” (솔직히 당황했다, ‘그게 편견이란 거지. 연예인, 특히 아이돌 그룹에 대한 색안경 같은 거야. 왠지 만들어진 인형 같은 느낌, 미안하지만 그래’라고 솔직히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 책은 얼마나 읽죠? 그럴만한 시간은 있어요?

“지난주에 읽은 책은 ‘리버보이’고요, 지금 읽는 책은 ‘3월은 붉은 구름을’ 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아무래도 소설 같은 걸 주로 많이 보게 되죠.” “책을 많이 보면 좋은데 시간이 잘 안나요, 낮에는 스케줄이 있고, 밤에는 힘들어요.”

-가장 힘들고 상처 받을 때는 언제죠?

“일전에 어느 기자 분이 순간 포착 사진을 합성해 만든 ‘효크’라는 게 떠돌았어요. 동영상에서 순간을 캡처하면 이상한 장면이 나오잖아요. 만드신 분들은 장난이시지만, 저희들에게는 심장에 칼이 꽂히는 거에요. 저희는 연예인이고, 더구나 아이돌 그룹이잖아요. 상처가 컸어요” “말은 날아다니고, 소문이 찐빵처럼 부풀잖아요. 연예계라는 곳이, 누구는 손가락 하나 클릭하면 되지만 그게 쌓이면 사람을 죽이는 상처가 되죠. 그게 우리숙명이라고 하지만 저희들은 아직 감당하기 어려워요.”

- 어린 나이에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담은 안되나요?

“사적인 시간이 힘들어요.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쓰고 나가면 그게 더 티 내는 거라지만 그래도 누군지는 모르잖아요. 처음에는 시선을 즐겼어요. 오히려 몰라보면 섭섭했어요. 아직도 나를 몰라보는구나 서운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불편해요. 참 이기적이죠? 하지만 길거리를 가다가 누가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고 싶으면 보통은 물어보고 찍잖아요. 안 그러면 도촬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도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달라고 하죠. 소녀시대의 나는 있는데 그냥 나는 없어졌죠. 그런데 이젠 다시 편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도 예전에 그랬더라고요. 좋아하는 연예인을 우연히 만나면 다시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그러니 사진 찍고 악수하고 싶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니 그게 당연하데요. 내 불편만 생각하면, 팬에게 내가 필요 할 때만 보여주는 거 잖아요.”
(과연 이게 19세 여고생의 대답일까?)

-꿈이 뭐였어요. 연예인 말고, 만약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디자이너요. 엔터사업을 하고 싶어요. 피아니스트요. 춤을 배우고 있었을 거에요. 아나운서요. 연기자요.
(다들 하나씩 이렇게 말하는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꿈이 있었는데 이젠 꿈을 버린 지 오래 됐어요.”

-(꿈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는 아이의 말에 축축한 습기가 느껴졌다)
왜 버렸어요? 꿈이 뭐였는데요.

“비웃으실지 모르겠는데, 국제변호사요. 저는 그게 꿈이었어요. NYU에서 그것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2개의 꿈을 좇았죠. 12살에 지하철에서 캐스팅 되어서 이젠 그 꿈을 접어둔거죠. 하지만 지금의 꿈을 이루고 나면…”
(지금은 접었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라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인터뷰지만 소녀의 접어둔 꿈 이야기를 듣고도 내 잇속만 차리려고 질문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꿈에 대한 작은 토론이 시작되었다.)

- 연예 기획사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뜻밖의 말이 튀어 나왔다. 일순 앞자리에 있던 매니저와 뒤에서 귀를 기울이던 로드매니저가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우리회사는 상당히 좋아요. 이수만 아저씨도 잘해주시죠. 특히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선생님이시고요. 하지만 다른 연예인들의 기획사 문제를 들어보면 우리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비록 우리회사는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나죠. 같은 연예인이니까요.”

- (소녀시대는 합숙을 한다고 한다. 공연이 없거나 연습이 없어도 그건 원칙이라고 했다. 심지어 30분의 시간도 내기 어려워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야 했던 티파니와 윤아도 그랬다. 어린 소녀들에게 스캔들이나 구설수가 생기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누가 가장 보고 싶어요. 가장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또 누구죠?

“엄마요. 아빠요. 부모님요.
(이구동성으로 엄마, 아빠를 지목했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었다. 심지어는 멘토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였다. 보고 싶단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들이 이 길을 가는데 믿어줘서 고맙고, 부모님들의 배려도 감사하다고 했다. 역시 십대 소녀였다.)

- 연예인 한다고 하니까 부모님들이 반대 안 하셨어요? 특히 아빠는 반대를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부모님들이 반대한 아이들은 여기까지 못 오죠. 요즘에는 연습실에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려오시는 경우도 많아요. 제 경우에는 아빠가 교회에서 노래하는 저를 보고 재능이 아깝다고 이 길로 나가라고 하셨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죠. 오히려 엄마가 걱정하셨어요. 험하다는데, 하시면서요. 하지만 우리 회사는 그런 면에서는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죠” “저는 엄마에게 왜 찬성했느냐 물어봤어요. 나중에 원망 들을까 봐 그랬대요. 제가 행복해지는걸 보고 싶었대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많이 죄송했어요.”


- 한류스타들처럼 세계로 진출할 계획은 있나요?

“당연하죠. 어릴 때부터 공부해왔어요. 중국어, 영어, 일어 모두 배우고요. 다만 대중의 편견이 걸림돌이죠. 실력이 되냐는 거죠. 노래, 춤, 공부 모든 게 함께 가야 해요. 우리는 그걸 준비하고 있고요. 그것 역시 또 하나의 큰 꿈이에요.”

- 요즘 아이들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물론 외모로 승부하는 건 옳지 않죠. 연예인은 보여주는 거니까 저희 같은 경우는 솔직히 그게 필요해요. 하지만 외모는 조건의 하나일 뿐이죠.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길게 못 가요. 다른 일을 해도 그럴 거 같아요.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기부 선행을 하는 김장훈 같은 가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쉽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에요. 마음이 선하시고 닮고 싶어요.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고 해요. 앞으로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볼게요.”

- 요즘 팬클럽 문제로 마음 고생이 많죠? 진정한 팬 문화는 어떤 거라고 생각해요?

“신나게 같이 즐기시면 좋겠어요. 연예인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같이 즐기고 느끼고, 그런데 파헤치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분석하고요. 아쉽고 속상하죠. 그것도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연예인에 대한 감정도 군중심리가 있어요. 댓글을 볼 때마다 그걸 깨닿죠. 때론 두려워요.”
(실제 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연예인 팬클럽끼리의 감정싸움으로 소위 10 minute 침묵사건이 벌어지고, 소녀시대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는 일이 일어났다.)

- 이제 자신들의 버라이어티가 소진된 것 같지 않나요? 한계를 느낀 적은 없나요?

(이 질문을 하자 눈에 띄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에요. 아직 다 못 보여 드렸어요. 더 보여드려야 해요. 이제 시작인걸요. 앞으로도 보여드리면서 더 쌓아나가야죠. 지금 가진 것이 전부라면 우린 끝이에요. 늘 앞서가야죠. 우리는 아직 한계를 느낄 자리에 있지 않아요. 아직은 탑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아니죠.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너무나 멀어요.”

-이수만씨는 어떻습니까? 자주 만나나요?

“저희를 아티스트로 배려해 주시죠. 꿈을 찾아주시고요. 음악적으로는 엄격하시지만.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 이라는걸 알아요. 생각해보세요. 대선배가 우리를 아티스트로 대우해준다는 거. 예전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어요.”

5. 마침

대중연예인과 아티스트의 차이는 소비의 기호에 있다. 대중연예인은 대중이 요구하는 아이콘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대중의 요구에 순종한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자신의 영감이 대중의 기호를 선도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콘이 되어 대중을 복종시킨다. 이들은 아직 대중 연예인이다. 어쩌면 이들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수만의 SM이 아티스트로 대우해주는 것이 떨린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티스트로 대우해 주더라도, 대중이 이들을 미소녀 아이템으로만 소비하려 드는 한, 그 길은 요원하다. 스스로 선택한 '소녀'의 굴레를 이제 어떻게 벗어나는가. 이점이 지금 이들에게 던져진 가장 난해한 숙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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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방에 올랏던 글인데 자료방에도 올렸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계셔서 옮겼습니다.

참고로 이 글을 처음 봤던곳은 DC팊갤임니다. 글쓴이는 ZEDA님이시구요

그분과 많은 갤러들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시더군요...(물론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