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아니 소녀들이 돌아왔다. 2008년이 원더걸스의 <노바디>로 저물었다면, 2009년은 소녀시대 <지>(Gee)로 시작됐다. 1월7일 발표된 <지>는 2월 셋쨋주까지 뮤직포털 ‘엠넷’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 열풍에 힘입어 소녀시대가 1년2개월 만에 발표한 음반은 8만 장을 돌파했다. 여기에 태연, 윤아, 티파니 등 9명의 멤버들이 저마다 다른 색깔로 입고 나온 스키니진도 인기를 얻었다. 그리하여 소녀시대는 명실공히 원더걸스와 쌍벽을 이루는 국민 여동생 그룹으로 올라섰다.

» 소녀시대

“인디음악 정체, 주류가 더 흥미로워”

2000년대 중반은 오빠들의 무대였다. S.E.S와 핑클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뒤 이들의 인기를 이어갈 ‘걸그룹’이 나타나지 않았다. 신화가 H.O.T의 인기를 이어가고, 동방신기가 아시아를 호령하는 사이에 핑클을 대신할 걸그룹을 찾기는 힘들었다. <텔 미> 열풍과 함께 원더걸스가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했지만 여전히 걸그룹은 동방신기와 빅뱅으로 대표되는 ‘보이그룹’을 따라잡기는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2008년 원더걸스의 <노바디>에 이어서 2009년 소녀시대의 <지>가 ‘터지면서’ 쌍두마차가 이끄는 걸그룹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 소녀시대는 ‘정답’을 찾은 듯이 보인다. 원더걸스가 <텔 미>에서 <노바디>로 이어지는 복고풍 댄스곡으로 음악적 색깔을 찾은 것처럼 소녀시대는 <지>로 고유의 음악적 전형을 찾아가고 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동안 축적된 소녀시대 브랜드 가치에 <지>라는 잘 만들어진 노래가 더해지면서 소녀시대 열풍이 불고 있다”고 분석했다. “너무 반짝 반짝 눈이 부셔~ 노노노노노~” “너무 짜릿 짜릿 몸이 떨려~ 지지지지지~”로 이어지는 <지>의 후렴구는 쉽게 기억되는 중독성을 지녔다. 김 평론가는 “후렴구를 앞세워 반복하는 ‘후크송’과 달리 정교한 리듬으로 진행되는 <지>는 소녀시대의 이미지와 어울리며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지>는 이효리의 <유고걸>의 작곡가인 ‘이트라이브’가 만든 노래인데, 이들의 화학적 결합은 현재 대중음악의 흐름을 상징한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인디음악이 정체됐다고 느껴지는 반면에 요즘엔 주류 댄스음악에서 흥미로운 노래들이 나온다”며 “서구 대중음악의 모방을 거듭하다 어느새 축적된 주류 음악의 역량이 괜찮은 창작물을 낳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듣기에도 부담 없고 기술로도 폄하하기 어려운 노래들이 걸그룹 현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1990년대 중반 한국 댄스음악 전성기에 그랬던 것처럼.

 



마침 지금은 소녀들이 성숙할 시기다. 원더걸스가 <노바디>를 부르며 그랬던 것처럼 소녀시대도 <지>를 부르며 소녀는 소녀이되 ‘스무 살’ 소녀의 성숙함을 선보인다. 이전보다 몸매를 강조한 스키니 바지에 쫄티를 입고서 여성미를 강조한다. 90년대 걸그룹이 2~3집에서 어김없이 거쳐간 성인식, ‘난 이제 소녀만이 아니에요’라는 선언이다. 이렇게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숙할 무렵엔 멤버들의 캐릭터도 살아나고 그룹의 인기도 높아진다. 소녀시대 멤버들도 지난 두어 해 동안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을 통해 각자의 캐릭터를 구축해왔다. 게다가 소녀시대 멤버들은 무려 9명. 그래서 차우진 평론가는 “소녀시대는 아주 매끈하게 다듬어진 한정판 피겨가 쭉 늘어선 느낌”이라며 “다양한 매력으로 다양한 취향의 팬을 포괄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여기에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선’을 찾았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에선 섹시함을 너무 강조하면 넘치고, 너무 순수하면 지루하단 평가를 받는다”며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귀여움에서 출발해 섹시함을 가미하는 전략으로 적절한 선을 찾았다”고 평가했다.

30~40대 ‘핑클·S.E.S 세대’의 부활

소녀들이 돌아오자 삼촌들이 나타났다. 걸그룹의 팬층으로 10~20대 못지않게 30~40대 남성들이 꼽힌다. 이들은 90년대 대중문화의 세례 속에 청춘을 보냈고 지금도 여전히 만화를 읽고 게임을 하는 ‘키덜트 세대’다. 또한 이들은 핑클과 S.E.S 세대다. 이들은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이 걸그룹의 팬이란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들의 소속사도 걸그룹을 기획할 때부터 새로운 문화 주체로 떠오른 30~40대를 염두에 두었다고 밝힌다. 실제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인기를 얻은 뒤에 30대 남성이 타깃인 게임 광고에 공히 출연했다.

원더걸스·소녀시대의 양강 체제에 도전하는 걸그룹도 나타났다. 2007년 1집 음반이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카라’는 최근 <프리티 걸>(Pretty Girl)을 히트시키며 걸그룹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여기에 최근 20대 중반의 섹시한 언니들 콘셉트인 ‘애프터스쿨’도 <아>(Ah)로 데뷔했다. 미국 여성그룹 푸시캣돌스처럼 섹시함을 앞세우는 애프터스쿨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점잖은’ 한국에선 섹시 콘셉트의 여성그룹이 성공하기 어려웠다. 이효리조차도 무대에서 섹시한 모습을 일상에서 털털한 이미지로 중화해야 했다. 20대 섹시한 여성그룹의 부재로 귀여움도, 섹시함도 걸그룹에 투사됐다. 이렇게 한국은 성숙한 여성미를 환영하지 않는, 거꾸로 뒤집으면 젊음을 ‘편애하는’ 사회다. 애프터스쿨은 과연 ‘부담스러운 섹시함’을 넘어설 수 있을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