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스타 대중을 바꾸다]
빅뱅 등 친근한 외모와 중독성 강한 노래로 중장년 층까지 팬 넓혀
가수 넘어 만능 엔터테이너 활동… 패션·안무 따라하기 열풍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지지지 베이베 베이베…'

최근 선보인 드라마 '태희혜교지현이'는 독특한 컨셉트의 마케팅으로 눈길을 모았다. 박미선, 정선경, 최은경 등30대 출연자가 소녀시대 '지'를 패러디한 뮤직비디오를 찍은 것. 이들은 소녀시대의 컬러 팬츠를 입고 "사랑에 빠졌나봐"를 외쳤다.

방송가 트렌드를 이끈 '무한도전' 멤버들도, '골드미스 다이어리'의 언니들도 소녀시대 '지'를 패러디했다.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일까? 30~40대 연기자가 아이돌(idol)을 패러디한 것은 10대 팬덤 현상의 한 가운데 있던 아이돌이 중년 아저씨 아줌마들의 워너비로 떠올랐다는 방증이 된다. 이미 인터넷에는 이들을 패러디한 수백 개의 동영상이 나이와 성별의 벽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아이돌을 향한 '전 국민적' 사랑은 비단 패러디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달 빅뱅이 출간한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출간 즉시 온오프라인 판매 1위를 기록했다. 10대 열성팬들의 단결된 애정공세라고 치부하기는 이르다. 판매량을 분석해 보면 30~40대 독자도 상당수다.

인터넷 사이트 'DVDprime(http://dvdprime.paran.com/)'의 커뮤니티 '당파싸움'을 클릭해 보라. '소시당(소녀시대 팬)', '카라당', '원더걸스당', '무소속'으로 출마한 30~40대 팬들의 아이돌 패러디 동영상이 즐비하다.

'당원'들은 주기적인 모임을 갖고 아이돌 스타의 캐릭터와 달력, 만화를 직접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회원들 간에 공유된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소녀시대/빅뱅/원더걸스

국민 아이돌의 등장

시작은 빅뱅이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개성 강한 뮤지션 아이돌의 등장이 국내 아이돌 스타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말이다. 중독성 강한 음악이 20~30대 대중을 끌어안았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그러나 슈퍼주니어와 원더걸스, 소녀시대로 이어지는 아이돌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아이돌 그룹 상당수가 국민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녀시대나 빅뱅 팬들은 폭이 상당히 넓어요. 10대는 물론이고, 30~40대 삼촌팬, 이모팬도 많죠. 사인회나 콘서트 현장에서 10대 팬들과 똑같이 줄서서 입장하죠."

대형 연예기획사 관계자의 말이다.

날로 다양해지는 팬들 덕에 슈퍼주니어의 소그룹, 슈퍼주니어티는 2007년 트로트 싱글 앨범을 냈다. 대표곡은 같은 해 한나라당 대선 로고송으로 쓰인 '로꾸꺼'다. 이들의 노래가 중장년층까지 범위를 넓혔다는 말이다.

"90년대 아이돌 스타가 가진 가장 큰 한계는 댄스가수란 점이에요. 노래가 댄스곡이니까 활동 범위도 한계가 있고, 팬 층도 10대에 머무는 거죠. 댄스가수는 나이가 들면 은퇴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 수명도 짧았고요. 2000년대 후반 아이돌 스타는 엔터테이너로 길러집니다. 활동 범위에 한계가 없어요. 자연히 팬 층도 두터워지는 거죠."

머니투데이 연예부 김겨울 기자는 국민 아이돌의 등장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댄스에 머물렀던 아이돌 스타들의 노래는 이제 발라드, 록은 물론 트로트까지 넘나든다.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은 단독으로 발라드 앨범을 냈고, FT아일랜드의 주종목은 댄스가 아니라 록이다.

소녀시대의 서현은 가수 주현미 씨와 함께 트로트 곡 '짜라자짜'를 녹음하기도 했다. 빅뱅의 멤버 대성은 트로트 '날 봐 귀순'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다양한 노래는 취향별로 나뉜 팬 층을 수용하는 것은 물론 세대 공감까지 이끌어낸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 씨는 "이전 아이돌 그룹은 팬덤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특정 세대를 겨냥한다. 이후 노래가 어필한다. 원더걸스와 빅뱅의 경우 이들은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먼저 소개되고, 존재가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자연히 팬층이 두터워졌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활동 영역이다. HOT, 젝스키스 등 1990년대 아이돌이 가수에 머물렀던 것과 대조적으로 2000년대 아이돌은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비롯해 라디오, 드라마, 뮤지컬까지 다양하게 활동하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됐고, 이 변화가 국민 스타를 만들었다.

김겨울 기자는 "90년대와 비교해 현재 기획사들의 아이돌 인큐베이팅 과정은 상당히 정밀해졌다. 연기부터 오락프로그램 진행하는 법, 언론 인터뷰 대응까지 가르친다. 과거 아이돌이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했다면, 이제는 역으로 반복효과를 노린다. 만능 엔터테이너로 길러 자주 얼굴을 선보여 호감을 준다"고 말했다.

SES와 핑클 등 아이돌 스타가 활동했던 19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지금의 30~40대가 아이돌 스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지금의 30대는 기존의 30대와 다르다. 이들은 어린 시절 아이돌 문화를 겪은 터라 아이돌 스타를 받아들일 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룹 소녀시대는 이 30~40대를 겨냥한 컨셉트로 만든 그룹이다. 상큼하고 건강한 10대 소녀가 여인으로 성장하는 컨셉트로 그룹을 키워냈다. 30~40대를 공략하고 나온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국민 아이돌의 등장은 방송가 환경 변화와 연예기획사의 정밀한 트레이닝, 적극적인 30대 팬 출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함께 즐겨요 아이돌!

원더걸스나 빅뱅, 소녀시대의 특징은 '옆집 동생' 같은 친근함이다. 1990년대 아이돌이 뛰어난 외모나 현란한 개인기로 인기 를 모았다면 2000년대 아이돌은 만만함으로 어필하는 셈이다. 스타를 보며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곁에서 함께 하는 느낌을 준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아이돌 그룹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상황이 푸근한 이미지의 아이돌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고, 아이돌 스타가 이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방송가 환경이 이런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때문에 전국민적 사랑은 전국민적 '따라하기'로 이어진다. 반복 후렴구로 무장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는 중독성을 가진 동시에 어느 세대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만만한 안무 역시 아이돌의 노래가 국민적 오락거리로 발돋움하게 했다.

아이돌 그룹의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아이돌이 만화캐릭터를 본 딴 것 같은 무대의상으로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2000년대 아이돌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스트리트 패션을 선보인다.

원더걸스의 레트로 룩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패션계를 강타했고, 다소 파격적인 빅뱅의 마스크 패션과 고글 패션, G-드래곤의 헤어스타일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인기를 모았다. 빅뱅의 탑과 G-드래곤이 입었던 배기팬츠가 20~30대 멋쟁이 남성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소녀시대의 스키니 팬츠가 패션계의 아이콘이 됐다. 일명 소시지 룩(소녀시대와 타이틀 곡 지GEE, 패션 경향을 뜻 하는 룩Look의 합성어)이다.

소녀시대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최혜련 스타일리스트는 "현재의 아이돌은 청소년층에게 실용적인 판타지를 제공하는 존재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의 요구 사항도) 거리에서 입을 수 있는 패션을 제시하는 소녀시대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돌의 의상이 스트리트 패션에 접목되는 비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 씨는 "국내 음악계는 상당히 보수적이란 점에서 한 동안 인기가 지속될 듯하다. 가요계에서 이런 위치를 한번 만들게 되면 한 동안 활동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같은 이른바 국민 아이돌 스타가 소속된 기획사는 상당한 파워를 자랑하는 곳들이다"고 말했다. 강 씨는 "단, 아이돌의 인기가 계속 뻗어나갈지, 아니면 이들 그룹으로 그칠지는 미지수다"고 단서를 달았다.

'지지지지 베이베 베이베'

'날 봐 날 봐 귀순'

지난 주말 노래방에서 부른 당신의 노래 중 상당수가 아이돌의 노래일 터다. 상큼한 봄 패션을 꿈꾸며 준비한 원색의 스키니 팬츠는 소녀시대가 원조다. 텔레비전 앞에서 재롱을 부르는 아이의 율동도 사실은 원더걸스의 것이다.

무서운 아이돌은 이제 대중을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