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Hot’이 한참 인기를 끌 무렵엔 JYP에서는 다음 앨범에 대한 기획안이 내려왔어요. 폭스바겐이 지금의 뉴 비틀로, 맥이 현재의 아이맥으로 진화했다면, 60년대의 모타운은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물음표가 있을 뿐이었죠.” 김효성 실장은 5개월 정도 음원을 계속 들으며 아이디어를 냈다. 모타운 성공기를 찾아보고, 영화 <드림걸스>를 보고, 60년대 미국 그룹 수프림스의 DVD를 보면서 의상 컨셉을 정했다. 국내엔 넉넉하지 않았던 60년대 스타일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과 외국 잡지, 당시의 의상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60년대에 젊은 시대를 보낸 기성 세대들도 향수를 느낄 만한 의상들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 달에 의상 제작비가 3천만원쯤 드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완벽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게 목표. 그래서 탄생된 프린지 장식이 찰랑이는 스팽글 드레스, 복고풍 패턴의 미니스커트와 플라스틱 귀고리 등 60년대 룩은 ‘노바디’의 인기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엄청난 UCC와 비슷한 컨셉의 의상이 브랜드에서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원더걸스 멤버들도 패션 감각이 진화했다. 특히 선미는 베르나르 윌헴을 좋아하고 데일리 프로젝트에서 쇼핑하는 패션 리더. “멤버들 모두 시간이 나면 인터넷으로 패션 소식을 접하고, 다른 사람들은 뭘 입었는지 확인하기도 하죠.”

원더걸스와 함께 여성 아이돌 시대의 전성기를 연 소녀시대는 스타일리스트 최혜련과 함께 1월 컴백을 앞두고 워밍업중이다. “그동안 엔터테인먼트와 패션계 사이에 스타일리스트의 교류가 많지 않은 편이었어요”라고 최혜련은 말한다. “하지만 최근엔 리밍, 채한석, 서은영 등 패션지에서 경험을 많이 쌓은 스타일리스트들이 연예인도 함께 담당하고 있죠.” 그녀는 이런 변화의 이유가 몇몇 셀레브리티들이 패션과 유행을 리드하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소녀시대는 단품이 아닌 스타일링 위주로 기획하고 있어요. 홍콩에서 바잉하거나 기존의 옷을 사서 리폼하기도 하지만, 제작에 비해 스타일링 비중을 높이고 있어요.” 요즘 들어 부쩍 성숙해진 소녀시대 멤버들은 젊은 세대답게 트렌드를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게다가 쥬시 꾸뛰르, 씨 바이 클로에, 질 바이 질 스튜어트, 미우미우, 이자벨 마랑 같은 브랜드가 스스로에게 어울린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다. “그런 취향을 이어가면서 좀더 성숙한 이미지를 완성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공주풍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 이젠 닐 바렛 같은 미니멀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시도해 보는 거죠.”

그렇다면 이 시대 아이돌 스타일의 핵인 빅뱅은 또 어떤 스타일을 기획중일까. ‘빅뱅 패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YG 엔터테인먼트는 전반적으로 패션에 아주 관심이 많다. “YG 멤버들은 모두가 옷을 좋아해요”라고 8년째 YG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는 지은 실장은 감탄한다. “양현석 대표만 해도 존 갈리아노와 지방시를 즐길 정도로 패션 취향이 진보적이죠.” YG에선 피에르 하디의 새로운 구두가 나오자마자 외국에서 구해서 신고 제레미 스콧의 새 룩이나 라프 시몬스의 스니커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게 일상적이다(<보그> 오피스의 대화처럼). 또 외국 부티크들과 교류가 원활해 해외에서 직접 바잉하기도 한다. 해외 사이트에서 본 랑방 신발이 너무 마음에 들어 선주문해 누구보다 먼저 신는 분위기. “지나치게 대중적이지 않은 것, 조금 더 빠른 것을 구하려고 하죠. 너무 앞서기보단 적당한 수준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지은 실장은 처음 기획 단계에서부터 뭔가를 유행시키려는 생각으로 진행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좋아하는 옷을 서로 권해주고 입다 보니 어느새 유행이 되고 있었던 것. “이렇게 빠르고 널리 유행이 퍼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며칠 전에 입었던 의상이 바로 카피되어 동대문시장에 깔리기도 하더라구요.” 지은 실장은 인스턴트 음식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반갑기도 하지만, 정식으로 수입하는 패션 회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능하면 협찬보다 구입해서 입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한번은 발렌시아가 쇼에 나왔던 스카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룩을 선보였는데, 거리에서 비슷한 스카프를 두른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디자이너의 새로운 컬렉션이 무대를 거쳐 거리로 즉각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다.

YG는 유난히 프로듀서와 멤버,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간의 소통이 수월하다. 기획할 때부터 함께 회의에 참석하고 서로의 의견이 투명하게 공유되면서 컨셉을 정하게 된다. “하루하루’를 부를 때 무대에서 입었던 총이 그려진 갈리아노 바지는 꽤 고가였어요. 하지만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해 멤버들과 함께 프로듀서를 설득하기도 했죠.” 지은 실장은 이번 2집 스타일에선 다섯 멤버를 위한 골드 슈즈가 필요해 10 꼬르소 꼬모를 통해 피에르 하디 남자 슈즈를 따로 구하기로 했다고 귀띔한다. “이번 주말이 첫 방송인데, 내일 도착한다고 연락이 와서 너무 기뻤어요.” 의상에 맞춰 신발을 매치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멋쟁이 5명의 스니커즈만 모아 놓으면 여러 시즌이 컬러별로 다 갖춰질 정도다. 물론 무대에서 춤을 많이 춰야 하기 때문에 신발은 가볍고 편해야 한다. 그리고 멤버 모두 유니폼처럼 똑같이 맞춰 입거나 지나치게 화려한 컬러가 눈에 띄는 과거의 아이돌과 차별을 두되, 하나의 아이템이나 컬러만 공통적으로 하는 게 빅뱅 스타일이라는 것.

‘빅뱅 패션’이란 신조어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멤버들의 패션 감도는 물론 패션 지식도 크게 작용했다. 디자이너가 누군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옷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차이를 보였다고 지은 실장은 전한다. “처음엔 갈리아노 스타일을 보여주며 설명해주기도 했어요. 지금은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가 되었지만요.” 출중한 패션 감각으로 알려진 지드래곤은 물론, 모두들 스타일닷컴으로 컬렉션을 미리 보고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수준이 됐다. “어제 광고 촬영하던 중 멀티숍 미로 스페이스에서 크리스 반 아셰의 새로운 스니커즈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려줬더니, 지드래곤은 촬영 휴식 시간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할 정도였죠.” YG 패밀리에서는 패션을 이용해 또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곤 한다. 멀티숍 쇼핑을 즐기는 멤버들을 위해 프로듀서 양현석이 쇼핑의 기회를 선물로 주는 것. “그는 빅뱅이 1위를 차지하거나 칭찬받을 일을 했을 땐 분더숍 멘이나 무이 등에 데려가기도 해요. 멤버들은 놀이동산에라도 온 듯 매장을 신나게 둘러보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고르죠.” 각자 스타일이 분명한 빅뱅 멤버들은 서로 괜찮은지 물어보거나 다른 멤버에게 어울릴 아이템을 추천하기도 한다. “대성이에겐 라이더 재킷이 잘 어울리니까 이거 어때요?”라며 권하는 식. 게다가 자기가 잘 안 입는 옷을 멤버끼리 교환하거나 공유해서 입으며 각자 스타일을 완성해 나간다.

패션 수준이 높은 멤버들 덕분에 지은 실장은 좀더 긴장하며 즐겁게 자료를 수집하게 됐다. 패션 브랜드에서도 예전엔 영화 배우의 레드 카펫 룩에 관심이 집중되는 편이었지만 요즘엔 빅뱅 스타일에 반해 먼저 연락을 해오는 일이 많다. “작년 어느 시상식에선 지드래곤에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 앤 드멀미스터의 양털 코트를 권했어요. 입어보고 별로면 안 입어도 된다고 말했죠. 본인도 만족하는 옷을 입을 때 옷과 가수가 모두 돋보이니까요.” 결국 앤 드멀미스터를 입은 지드래곤을 비롯한 빅뱅의 시상식 룩은 어떤 가수나 배우보다 주목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엄청났다. “스트리트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 등의 경계 없이 믹스하는 게 좋아요. 그게 진짜 현실적인 스타일링이기도 하구요. 발렌시아가 코트가 너무 예쁜데 여기에 뭘 신을까 고민하다 오래 신어서 지저분해진 컨버스를 매치했더니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그런 룩들도 빅뱅 멤버들에게 제격이었구요.” 패션지에서 화보 스타일링하듯 방송을 앞둔 아이돌 스타들 역시 스타일링 회의가 몇 시간 동안 이뤄지고 있는 게 요즘의 풍속도다. 얼마전 비욘세는 MTV 유럽 어워즈에서 가레스 퓨의 드레스를 입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새 앨범 커버에서 로다테를 입었다. 갈리아노 팬츠와 드멀미스터 코트를 입는 빅뱅과 데일리 프로젝트에서 아방가르드한 옷을 쇼핑하는 원더걸스 멤버들이 있으니 코리안 아이돌 스타 역시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바야흐로 이들도 자기 음악에 뭘 입혀야 하는지, 또 자신에게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 그리고 어떤 디자이너가 뜨고 어떤 구두가 핫 아이템인지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아이돌 스타일이 패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성장하며 런웨이보다 훨씬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대!

 
- 자세한 내용은 <보그> 2008년 12월호에서 확인하세요!
- 에디터 / 김은지
- 포토 / AN JI SUP, CHOI MI KYUNG, YONHAP PHOTO, GETTY IMAGES / MULTIBITS
- 출처 / www.vogue.com



출처 - www.vogue.com


후출처 - 베스티즈 게스트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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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는 어찌 달지 몰라서 그냥 기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