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부대의 저녁밥상에 올라온 '소녀시대'
[스타뉴스 2009-01-15 10:30]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강태규 ] 왕십리의 한 식당. 40대에서 50대로 보이는 직장인 한 무리가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저녁식사에 곁들여 소주잔을 부딪히고 있다. 그 사이로 튕겨져나오는 한마디가 뒷머리를 잡아당긴다. 소주잔을 들며 '티파니 짱!'이란다.

일순,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다짜고자 아저씨들의 언성이 높아진다. 뒤이어 한 아저씨가 '태연'이 최고란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태연은 일단 가창력이 받쳐주잖아. 그리고 외모까지 되지'라며 부연 설명까지 곁들인다. '외모 하면 티파니지 무슨 소릴, 아이돌 그룹이 무슨 가창력이야, 비주얼이 쵝오(최고)지' 곧바로 반박이 이어진다. 이를 듣고 있던 50대로 보이는 직장 상사가 거든다. '새벽이가 제일 참해. 불쌍하자녀, 시어머니한테 구박받고' 윤아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 아저씨들의 밥상에 걸그룹 '소녀시대'가 올라온 것이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꼭 10대들이 노는 것 같다. 심지어 태연 아저씨 팬들은 '티파니 얼굴이 크지 않느냐'며 상대를 윽박지르고, 티파니 팬들은 '태연은 숏다리 아니냐'고 응수한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더니, 한 아저씨 왈 '소시팬(소녀시대팬)들이 분열하면 곤란하다'는 말로 중재에 나서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진다.

그는 한 발 나아가 '원걸(원더걸스)의 침공을 방어하기도 바쁘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오십을 먹은 아저씨들이 이내 마음을 다잡더니 걸쭉한 목소리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의 후렴구를 합창한다. 한 아저씨의 마지막 탄식. '야, 감동의 물결이 밀려드는구나'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여서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다른 식당에서는 원더걸스나 브라운아이드걸스 이야기가 밥상에 올라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 사오십을 먹은 아저씨들이 이렇게 걸그룹에 열광하는 현상은 인터넷 공간 도처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저씨들의 소녀그룹에 대한 반란은 어떻게 생성된 것일까? 애초에 그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던 걸그룹에 대한 민망한 애정공세는 '소통의 원활'에서 출발한다. 10대들이 열광하고 있는 현실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에는 '단절의 압박'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가정내 10대의 자녀를 둔 아버지가 딱 그 세대들이다. 자녀들과의 '소통'을 위해 알게 된 걸그룹과 첫대면을 하고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팬이 되어 버린 우리시대의 아버지가 바로 그들이다.

'소통'을 위해 아버지는 오늘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최신 히트곡을 자녀들과 함께 들어줘야 하고, 때로는 개스트로섹슈얼 열풍에 몸을 던져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요리도 해야 비로소 인정받는 아버지가 된다. 걸그룹의 인기는 10대들만의 열풍이 아니다. 그들과 한 몸이 되어야하는 우리시대의 아버지가 든든한 후원자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뜨거운 연민의 정도 느껴진다. 그들만의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20개 도시 순회 공연으로 30만 관객을 불러모은 조용필 투어 공연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부부들은 지갑을 열었다. 조용필의 노래를 통해 위로받았던 세대들은 이제 그들의 자녀와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정서와 '타협해야 하는 현실'에 서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여야 한다. 그 옛날 아버지가 즐겼던 양질의 문화를 끄집어내 함께 '역소통'할 수 있는 마당을 공유함으로써 치우치지 않는 '문화 쏠림'의 혜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하나를 주고 받으면서 둘을 가르쳐야 한다. 세대간의 벽은 그들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세대의 공존'으로 허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쿨투라'편집위원. www.writerk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