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그룹 ‘소녀시대’, 이 소녀들은 누가 꾸는 꿈입니까?

현 가요계는 물론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콘이 소녀시대다. 라면에서터 최고급 휴대폰 같은 럭셔리 상품까지 모든 종류의 CF를 꿰차고 있다. 뿐만 아니다. 10대에게는 우상, 20대에게는 연인, 30대에게는 예쁜 여동생, 40대 이상에서는 귀여운 딸이자 손녀로 다가가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다.

이런 소녀시대는 어떻게, 누가 만들었을까. 소녀시대가 단지 누군가의 꿈이라면, 부러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꿈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진리란 인식과 그 대상의 합치’라고 했다. 소녀시대가 인기가 많다는 것이 진리라면, 소녀시대가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과 인기가 많은 소녀시대라는 대상은 합치된다고 볼 수 있다. 그 대중의 인식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현대는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사회적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시대다. 가요계, 특히 소녀시대에 적용하면 소녀시대라는 존재가 대중의 의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의식이 소녀시대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1992년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 전혀 통용되지 않던 장르를 들고 나와 대중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였다. 서태지와아이들이란 존재가 대중, 즉 사회적 의식을 규정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소녀시대는 아이들(idol) 산업이 절정인 지금, 대형 매니지먼트사와 대중의 욕망에 의해 발현됐다. 사회적 의식이 소녀시대라는 존재를 규정해버린 것이다. 대중이 좋아하고 원하고 보고 싶어 하는 바를 모두 쓸어 담은 대표적인 아이콘으로서다.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소녀시대 첫 단독 콘서트 ‘더 1st 아시아 투어 콘서트-인투 더 뉴 월드’는 이런 대중의 욕망에 화룡점정했다. 팬들이 소녀시대에게 바라던, 꿈꾸던 것을 다 볼 수 있는 무대였다.

콘서트의 시작은 소녀시대 멤버 9명이 천사로 분장해 강림하는 영상이었다. 첫 곡 ‘소원을 말해봐’ 노랫말처럼 팬들이 “머리에 있는 이상형을 그려”오던 “꿈도 열정도 다 주고 싶은 행운의 여신”이었다. ‘소녀시대’, ‘에뛰드’, ‘키싱 유’ 등을 부르는 내내 마찬가지였다. 아울러 소녀시대 ‘지(Gee)’의 가사처럼 “너무 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 숨을 못 쉴” 정도였다. 콘서트는 꽃향기와 구름의 숨결로 가득했다.

특히, 미니음반 2집 수록곡 ‘동화’, 서현(18)이 솔로로 부른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수록곡 ‘16 고잉 온 17’, 영화 ‘싱잉 인 더 레인’ OST의 ‘싱잉 더 레인’,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메인 테마인 ‘오버 더 레인보’ 등을 부를 때는 동화 같은 영상이 더해지면서 환상에 존재하는 소녀들을 보는 것 같았다. 무지개와 마법 가루가 흩뿌려지는 영상을 뒤로 하고 윤아(19), 유리(20) 등이 와이어를 매달고 천사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소녀시대가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소비되고 있는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날 공연은 한 마디로 호접지몽(胡蝶之夢)이었다. 꿈에 내가 나비가 돼 즐기는데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분간을 못함을 일컫는 이 말은 사람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비유한다. 소녀시대 콘서트에 이 말을 빗대자면 팬들이 소녀시대의 꿈을 꾸는 건지 소녀시대가 팬들의 꿈을 꾸는 건지 구별을 못할 지경으로 공연은 화려한 꿈만 같았다.

그러나 역시 꿈은 꿈일 뿐이다. 여기서의 꿈은 ‘비전’인 아닌 ‘환상’일 텐데 말 그대로 상상은 가능하지만 잡을 수는 없는 꿈을 의미한다. 물론, 팬들이 소녀시대에게 바랐던 것은 꿈결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꿈은 깨지기 쉽고 결국은 반드시 깨지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꿈은 꾸고 깨어나기 때문에 꿈이다. 소녀시대가 너무 꿈결 같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깨지면 더욱 무참하게 깨질 가능성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날 공연에서는 꿈, 그러니까 환상 같은 장면에서도 또 다른 꿈인 비전을 감지할 있는 순간이 존재했다. 각 멤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솔로 무대였다. 서현은 ‘16 고잉 온 17’을 부르기 전 피아노 실력을 뽐냈고 티파니(20)는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 출신 팝스타 리야나(21)의 ‘엄브렐러’, 태연(20)은 미국 걸그룹 ‘푸시캣돌스’의 ‘허시허시’를 섹시하게 소화해냈다. 윤아는 베이시스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써니(20)는 독일 그룹 ‘보니 엠’의 ‘써니’, 제시카(20)는 미국 그룹 ‘아쿠아’의 ‘바비 걸’을 능숙하게 노래했다. 수영(19)은 미국 가수 어사 키트(1927~2008)의 ‘산타 베이비’, 유리는 미국 가수 시애라(24)의 ‘1, 2 스텝’, 효연(20)은 강한 비트 음악에 맞춰 댄스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이렇게 소녀시대 멤버 9명은 각자 무대에서 개인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해내며 꿈(fantasy)을 꿈(vision)으로 치환해내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시대는 2007년 8월 싱글 음반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한 이래 약 2년4개월 만에 첫 단독 공연을 열었다. 이들은 3시간 가까이 펼쳐진 공연 말미에 울음을 터뜨렸다. 공연 전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듯 “단독 콘서트는 9명 멤버 모두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콘서트를 열게 돼 꿈만 같아서”였을까.

콘서트 도중 영상에서 소녀가 되길 꿈꾸던 소녀시대 멤버들은 “마음속의 작은 숙녀와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꽃 같은 소녀시대 멤버들도 언제까지나 동화 속, 환상 속 소녀로만 남아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꿈같은 첫 단독 콘서트를 마쳤다. 이제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소녀시대 꿈의 정체성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꾸는 꿈인지, 대중이 꾸는 꿈인지, 아니면 소녀시대 멤버 자신들이 직접 꾸는 꿈인지…. 소녀시대, 도대체 이 소녀들은 누가 꾸는 꿈입니까? 첫 단독 콘서트는 누가 꿨던 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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