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 글로벌 SM 제국에 날개 달았다.

[기획취재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인수 합병 소식이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방식의 합병은 각 회사마다의 장, 단점을 서로 보완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간의 인수 합병은 국내 음반 업계에 일대 변혁을 불러올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8월8일 발표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울림엔터테인먼트 인수가 대표적인 예다.

인피니트, 넬, 테이스티 등이 소속되어 있는 울림엔터테인먼트는 SM과 합병이 되었다. SM C&C 소속의 독자적인 ‘울림 레이블(Woolim Label)’로 운영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울림 레이블, 어떤 구조인가?


레이블이란 음악을 제작하는 데만 집중하는 음악제작회사라 볼 수 있다. 음반을 찍어내고 유통시키고 홍보를 하는 업무 외에 유통사와 연계하는 형태이다. ‘울림 레이블’은 이번 합병으로 음악제작에만 집중하고 유통에 관해서는 SM C&C에 권한을 일임하게 되다.

SM에서는 회사의 음악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 좋고 울림 레이블은 독자적인 음악색깔을 유지하면서 음악제작에 집중할 수 있는 상부상조의 구조인 것이다.

SM C&C의 관계자는 “당연히 마케팅에 있어서 협력은 있겠지만, 기존 인력 및 업무를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고 전했다. 실제 울림소속 20명 가량의 전 직원도 함께 SM으로 이동했다. 인수합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조정도 없는 바람직한 형태이다.
 
부러움 사는 SM의 해외진출 노하우


이 같은 인수합병에는 SM이 다양한 색깔의 아티스트를 보유하려는 경영전략이 숨어있다. 이것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하기 위한 방안인 것이다. 또한 이번 울림 레이블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회사를 레이블로 인수 합병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예기획사들이 SM의 레이블로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는 분위기다. 작은 소속사들의 경우 좋은 음원을 제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케팅 업무는 취약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유다. 레이블화는 음반 판매에 관련된 마케팅 업무에 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회다.

또한 해외진출을 노리는 기획사들은 많이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 레이블화를 원하는 소속사들은 SM이 오랜 시간 전부터 기반을 닦아 놓고 있는 해외 진출 노하우와 막강한 배급망이 탐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SM과 한솥밥 먹게 된 아티스트


무엇보다 재조명 되는 것은 SM과 한솥밥을 먹게 된 인피니트와 넬, 테이스트이다. 이 중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성 그룹 인피니트의 행보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SM에서 이번 합병을 진행한 것은 인피니트가 한류스타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또한 K-POP을 이끌어온 주역이라 할 수 있는 SM에서 인피니트를 어떤 그룹으로 성장시킬지에 대해서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M의 새로운 기대주 인피니트는 누구?


SM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인피니트는 어떤 그룹인지 한번 살펴보자. 남성 댄스 그룹으로 리더 김성규와 함께 장동우, 남우현, 호야, 이성열, 엘, 이성종 까지 총 7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인티니트는 초창기 넬, 지선 등  아이돌 음악과는 성향이 다른 인디음악의 성향의 뮤지션들을 보유하고 있는 울림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대중음악을 하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데뷔 당시 1980년대 보이그룹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리듬과 춤을 각색해 절도 있는 음악 스타일을 제시했다. 평론가나 매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다른 아이돌과 차별화 되었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절도 있는 춤동작은 인피니트에게 ‘군무를 잘 추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무한의 아이돌 인피니트 칼군무돌의 등장


인피니트는 데뷔 전부터 소속사 선배인 에픽하이의 무대에 함께 서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에픽하이와 울림은 가요계의 드문 재결합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던 터였다.

에픽하이가 부른 2010년 동계 올림픽 응원가에 코러스로 참가 했으며 스페셜 음반 타이틀곡 ‘Run’의 뮤직비디오에 출연, 컴백 무대에도 함께 하며 대중에게 조금씩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후 엠넷의 ‘인피니트! 당신은 나의 오빠’에 출연하면서 데뷔 전부터 인지도를 쌓았다. 프로그램은 1회 시청률이 채널 주간 최고 기록을 세우며 데뷔무대를 갖지도 못한 신인그룹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끌어내기도 했다.


프로그램 종영 후 인피니트는 첫 미니앨범 ‘퍼스트 인베이션’으로 정식 데뷔했다. 인피니트는 데뷔 당시부터 1990년대 펑키스타일의 곡과 일사불란한 군무를 선보이며 90년대 남자아이돌 그룹의 모습을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파워풀한 7인의 무대 퍼포먼스는 다른 아이돌 그룹과의 차별성을 두기에 충분했다. 

인피니트의 음악적 성향은 80~90년대 대중음악 소비자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어필하기 시작했다. 일곱 명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추는 군무는 ‘칼군무’로 불리며 대중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인피니트, 한류의 정상에 우뚝 설 것인가?


두 번째 미니앨범 에볼루션의 타이틀 곡 ‘BTD(Before The Dawn)’의 안무가 마치 전갈을 연상케 하는 동작으로 ‘전갈춤’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또한 그들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보다 연습실 군무 동영상이 매일 화제에 오르내렸다. 인피니트는 ‘군무돌’이라는 애칭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며 극적인 인기상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1년 9월, ‘내꺼하자’로 드디어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내꺼하자’의 티저 영상은 불과 공개 몇 시간 전 중국 시나닷컴을 통해 불법 유출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후속곡이자 1집 정규 앨범의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곡인 ‘파라다이스’는 10월, 활동시작과 동시에 1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평론가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유희열은 인피니트의 데뷔곡 ‘다시 돌아와’를 “2010년 최고의 아이돌 음악”이라고 평했다. 인피니트를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시킨 곡인 ‘내꺼하자’는 대중음악 평론가 20인이 뽑은 ‘2011 올해의 노래’ 공동 2위에 올랐으며, 웹진 ‘웨이브’의 평론가 차우진과 ‘보다’의 평론가 김윤하로부터 ‘2011 올해의 싱글’로 선정되기도 했다. 평론가 김학선은 “한번만 들어도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는 후렴구가 매력적인 곡”이라고 극찬했다.


당시 가장 지명도 높은 아이돌들을 제치고 네이버뮤직이 선정한 ‘검색으로 듣는 음악 ’10대 선호 아이돌(2011.09.01 ~ 2011.10.31.)’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웹진 ‘weiv’ 편집위원 최민우는 “아이돌 과포화 상태인 현재의 음악 시장에서 예능이 아니라 음악(과 춤)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인피니트의 평가는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일본의 음악 전문지 ‘뮤직 매거진’의 편집장 다카하시 오사무는 “세련된 느낌의 곡과 멤버들의 군무는 동작이 잘 맞고 박력이 넘쳐 다른 K-Pop그룹과 다르다”고 소개했다.

2011년 1월 ‘다시 돌아와’를 번안한 일본 첫 싱글 ‘토라와’는 발표 하루 만에 일본 유명모바일 사이트 ‘뮤직닷제이피(music.jp)’ 벨소리 차트 케이팝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같은 날 동방신기가 발표한 싱글은 12위였다. 2월 발매한 싱글 ‘쉬즈 백(She‘s Back)’역시 같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인피니트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일본 내의 인지도를 높여갔다. 인피니트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고 일본 진출 8개월 만에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9월21일 일본 제프(ZEPP)오사카를 시작으로 23~24일 이틀간 요코하마 브리츠(BLITZ)에서 열린 ‘리핑 오버(Leaping Over)’ 콘서트를 열었다. 만여 명의 일본 팬이 몰리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일본 팬들은 아직 일본에 발매전인 인피니트의 노래까지 함께 따라 불렀으며 콘서트 막바지엔 눈물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11월 발매한 정규 싱글 ‘BTD(Before The Dawn)’는 발매 전 선주문 7만장을 기록했으며 발매 첫 주 오리콘 데일리 2위, 위클리 7위에 오르며 차세대 한류 아이돌로서 위력을 보여 주었다.

2012년 12월에는 세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추격자’가 미국 빌보드지 선정 ‘20 베스트 K-POP 송즈 오브 2012'(20 Best K-Pop Songs of 2012)’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1위에 선정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깬 결과였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컸다.

빌보드는 “파워풀한 보컬, 다이내믹한 기타, 드라마틱한 바이올린으로 이뤄진 초반부는 얼핏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50초 만에 폭발적인 가창력과 트럼펫이 이끄는 코러스, 80년대 신시사이저는 단숨에 음악을 변화 시킨다”며 “K-POP이 지닌 혁신을 증명하며 최고를 차지했다”고 평가를 내렸다.

새로운 도전과 또 다른 시작


2013년 3월 인피니트는 길었던 일본 활동을 마치고 4번째 미니앨범 ‘뉴 챌린지(New Challenge)’로 한국 가요계에 컴백했다. 타이틀 곡 ‘Man in Love (남자가 사랑할 때)’는  2001년 핑클에 이어 12년 만에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 3사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차례의 단독 콘서트를 모두 매진시키며 ‘완판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인피니트는 6월 첫 번째 월드투어 ‘원 그레이트 스텝(ONE GREAT STEP)’의 계획을 발표했다.

7월 월드투어 포스터가 공개된 후 강변 CGV에는 인피니트의 월드투어 포스터가 실내 벽면 메웠고 수많은 팬들이 포스터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이는 팬들 사이에서 성지순례로 불리며 월드투어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고조 시켜갔다.



8월9일, 드디어 월드 투어의 베일이 벗겨졌다. 이틀간 2만 2천여 명의 팬들이 모인 체조경기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SM과 울림의 합병이 발표된 날이기도 했다.
인피니트 멤버들은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 서 팬들에게 공연을 마치는 소감을 전하면서 “변하는 건 하나도 없다. 데뷔 때부터 함께 해왔던 분들과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소속사의 결정을 믿고 따른다. 여러분도 우리를 믿어 달라”며 SM과의 합병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
 
지난 4년간의 음악활동을 응축시킨 무대였다는 평을 받은 무대였다. 또한 월드투어에 순항의 돛을 올린 인피니트는 이제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는 일만을 남겨 두고 있다.

인피니트를 키워줄 SM은 어떤 곳?


원석과도 같은 인피니트를 진정한 보석으로 빛나게 만들어줄 SM은 어떤 곳일까.

SM은 1996년 H.O.T를 성공시킨 이후 국내음반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후 신화, 플라이 투더 스카이, SES, 보아, 동방신기, 샤이니, 소녀시대, 에프엑스, 슈퍼쥬니어, EXO까지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이로써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거듭난 곳이다.

SM의 시작

우리나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은 SM도 처음부터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의 SM을 설립한 대표 이수만은 미국과 일본서 유학중이던 1980년대부터 아이돌 육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돌아와 1995년도에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이수만은 일본과 미국에 등장한 아이돌 양성 프로그램을 한국에 적극 도입해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때 이수만 대표의 초기 자본금은 5000만원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했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차가운 냉대와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내놓은 가수가 바로 H.O.T였다.



H.O.T는 1996년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이후 ‘캔디’로 각종 음악방송에 1위를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10대, 20대들은 이들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따라 췄으며 옷, 가방, 모자 등의 패션 까지도 모두 따라 했다.

H.O.T의 성공으로 SM이 성장할 수 있었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이수만 대표의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던 시기였기도 하다. 당시 엄청난 시대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H.O.T의 멤버 중 강타는 아직도 SM에 남아 이사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아직도 SM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마이더스의 손 이수만


이수만 대표의 성공은 앞으로가 시작이었다. H.O.T에 이어 SES의 ‘I’m your girl’로 여자 걸 그룹 까지 성공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연속적으로 신화의 ‘TOP’, ‘yo’등을 성공시켰다.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이수만은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게 되며 가수 이수만이 아닌 기업가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러한 성공 이면에는 SM만의 ‘특별함’이라는 확고한 브랜드 가치가 있었다. 많은 가수나 연예인들이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강조해도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단지 ‘특이하다’정도로 끝나버렸던 것이 현실.

그러나 SM에서 내놓은 가수들은 전사, 요정, 여신 등의 콘셉트로 특별한 이미지를 유지했고 그것을 우상시 하는 ‘팬덤’을 형성했다. 또한 “특별한 이들의 팬들까지도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소속 가수의 팬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덕분에 소속가수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이들이 SM가수들의 성공을 이끌었다.

아시아 진출을 위해 준비된 13살 가수 보아



이수만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미 H.O.T와 SES를 성공 반열에 올려놓았으면서도 연습생들을 모아서 새로운 가수를 준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여서 키웠던 가수가 바로 2000년도에 데뷔한 보아였다.

보아는 당시 만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1집 ‘ID; PEACE B’로 데뷔했다. 13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뛰어난 가창력과 댄스 실력도 이슈였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수준급의 일본어와 영어실력 이였다.

보아는 ‘아시아의 별’을 목표로 해외진출을 위해 4년 동안 트레이닝 시켰던 이수만의 히든카드였다. 특히 일본진출을 노리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일본어 공부를 위해 유학까지 강행했다. 유학기간 중에는 NHK아나운서의 가정에 머물게 하면서 어학을 배웠고 도쿄의 연예인 양성학교인 호리프로에서 보컬과 댄스, 연기 트레이닝을 받았다.


본격적인 일본 활동을 시작하면서 SM Japan의 협력사이자 일본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 AVEX와 계약을 채결했다. 한국과 같은 곡인 ‘ID; PEACE B’로 일본에서 2001년도에 데뷔한 보아는 진출 2년 만에 오리콘 차트 1위를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보아의 활약은 대단했다. ‘No.1’, ‘My Name’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으며, 일본에서도 최고의 가수만 설 수 있는 연말 시상식인 제57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할 정도로 일본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데뷔 13년차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보아의 해외진출 성공은 지금 같은 한류열풍과는 거리가 멀었던 2000년대의 일본시장에서 ‘잔다르크’가 일으킨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다른 국내 가수들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SM의 2세대 그룹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쥬니어


보아를 안정적으로 해외에 진출시킨 SM은 그 사이 한국에서 다음 세대를 이을 새로운 가수들을 양성해 내고 있었다. 바로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슈퍼쥬니어이다. 이 3그룹은 데뷔 초반부터 출중한 외모는 물론 일사불란한 안무와 가창력으로 한국에서 엄청난 팬덤을 끌어 올렸다. 이들은 HOT와 SES을 이을 SM의 2세대 아이돌로 평가 받았다.

동방신기는 2004년 데뷔 당시부터 각종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를 석권하며 국내 최고의 남성그룹으로 성장했다. 연타로 슈퍼쥬니어도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국내 음반시장은 보이그룹의 전성기를 열었다.

남성그룹이 강세였던 2007년도는 지금처럼 걸 그룹이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소녀시대는 실로 용감하게 데뷔 했다. 각기 다양한 개성을 가진 9명의 소녀들은 기존 걸 그룹에서는 흔치 않았던 칼군무와 가창력으로 꾸준히 인기를 모았다. 지금은 명실상부 한 국내 최고의 걸 그룹이 됐다.


소녀시대는 10대, 20대 여성들이 독식하고 있는 펜클럽 시장에서 일명 ‘삼촌팬’을 만들어냈다. 소녀시대의 성공이후로 걸 그룹이 대거 등장하면서 남자그룹이 장악하고 있던 국내 음반시장을 걸 그룹으로 바꿔놓는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2세대들의 해외 진출

SM의 2세대 그룹들은 국내에서의 성공이후 활발하게 해외진출을 진행 했다. 그중에서도 동방신기는 일본 시장에 중점적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보아에 이어 SM Japan의 매니지먼트 지원과 부단한 노력으로 오리콘 차트 2013년 상반기 랭킹 4위에 오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덕분에 일본진출의 안정적인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한국가수 최초로 일본 5대 돔 투어, 16회 공연, 70만 명 대기록도 세웠다. 일본에서 판매한 음반 판매 수익만 1조 3천억에 달했으며 동방신기의 포스터나 사진이 부착된 각종 제품 등을 판매하며 다양한 부가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수만 대표는 보아를 시작으로 일본 시장에 닦아 놓은 노하우와 탄탄한 배급망을 가지고 동방신기까지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이것은 타 소속사에서도 따라 잡을 수 없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방신기에 이어 슈퍼쥬니어와 소녀시대도 일본 진출을 한 상태이다. 이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까지도 다양한 해외활동을 시작했다. 국제무대에서 더욱 인지도를 쌓아가며 전 세계를 상대로 팬층을 넓혀가고 있다.

샤이니, f(x), EXO 3세대의 등장


2세대들이 안정적으로 해외진출을 하는 동안 이수만 대표는 3세대를 이을 가수들을 만들어 냈다. 2008년도에 ‘누난 너무 이뻐’로 데뷔한 보이그룹 샤이니는 귀여운 외모와 뛰어난 예능감으로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하며 누나 팬들을 끌어 모았다.

2009년에 데뷔한 걸 그룹 f(x)는 어린나이와 톡톡 튀는 패션 감각으로 10대들에게 인기몰이 함과 동시에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특히 5명의 여성 멤버 중 중국인 있어서 앞으로 중국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여성 그룹이다.

가장 최근인 2012년에 데뷔한 EXO는 정규 1집 'XOXO(Kiss&Hug)'로 단숨에 각종 음악 방송의 1위를 휩쓸었다. 또한 특이한 점은 총 12명의 멤버 중 4명이 중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는 EXO-K와 중국활동을 위한 EXO-M으로 유닛을 나눠서 양국에서 활동을 한다.

중국의 13억 인구를 노린다!


슈퍼쥬니어, f(x), EXO까지 최근 SM에서 데뷔한 그룹에는 중국인이 멤버가 한명 이상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SM이 중국진출을 노리고 있고 그에 특화된 팀을 만들기 위한 전략임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미 중국은 한국드라마나 한국가수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만큼 한국에 우호적인 시장이다. 뿐만 아니라 13억이라는 인구는 매력적인 소비자다.

이수만은 이 점을 예견하고 2004년에 SM China를 설립해 두었다. SM Japan은 일본 기업의 협력을 받았다면 SM China는 단독 투자 형태로 만들어져 더욱 의미가 크다. 과거 H.O.T와 SES가 중국진출을 시도했던 데다 대만에서 앨범을 발매해 수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덕분에 SM은 중국내에서도 H.O.T소속사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우호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SM은 중국진출을 노리고 새로운 3세대 가수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중국현지 인재 발굴에 주력했다. 한류 열풍으로 중국의 인재들이 SM 오디션을 보기위해 몰려들었고 그 중에 선발된 행운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트레이닝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각 팀에 속한 중국인 멤버들은 중국진출을 위한 현지 활동에서는 팀의 구심점이 되어 빠른 현지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 멤버가 포함된 슈퍼주니어는 대만의 대표적인 음원사이트인 KKBOX에서 무려 121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결과로 신기록을 수립한 바 있다. 총 10개국을 투어 하는 ‘슈퍼쇼5’ 콘서트에서도 중국지역 공연이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만에서는 역대 대만공연 사상 최단기간 매진, 해외가수 최다 관객동원 등 연일 신기록을 갱신 중이다.

K-POP의 주역, SM이 만들다

SM의 현지화 전략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각 팀의 특성을 극대화함으로써 K-POP의 주역이 되어 해외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소속가수들을 총집합한 ‘SM타운 콘서트’를 ‘월드투어’가 진행되기도 했다.


월드 투어를 떠나기 위한 전세기에서 소속가수의 셀카사진을 각종 SNS에 노출시킴으로써 기대와 궁금증을 자아냈다. 또한 국내 팬들은 SM의 소속가수가 아니라 한국가수가 외국에서 당당하게 콘서트를 주최하고 외국 관객을 동원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꾸준한 인기를 모아오던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의 성공은 물론 미국 뉴욕과 타문화에 배타적인 유럽국가에서도 콘서트가 진행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in paris’는 1만 4천여 명의 유럽관객을 동원했으며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몽드’와 ‘르피가로’에서는 ‘유럽을 덮친 한류’라는 헤드라인으로 연일 기사가 보도되었다.

SM의 성공 신화, 아직 끝이 아니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했던 SM은 현재 최상위권 중소기업 수준에 달한다. 가요계에 큰 이변을 일으킬만한 톱 가수들을 연달아 양성해낸 SM은 국내 음반 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이수만은 국내시장에 만족하지 않았다. 세계를 노리는 글로벌 가수 양성을 목표로 끊임없이 연습생을 모집하고 키워냈다. 이러한 장기 트레이닝 시스템은 여느 기획사보다 완성도가 높은 가수들을 배출해 냈으며 SM의 경쟁력이 되었다.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해외진출의 활로를 쥐고 있는 SM은 업계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레이블화를 통해 소속된 인피니트와 넬 또한 앞으로 SM이라는 날개를 달고 세계를 상대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매머드급 회사의 출연, 앞으로의 향방은?


SM은 국내업계 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의 활로를 개척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레이블화를 시작으로 회사의 규모가 확장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일명 “매머드급 회사의 출연”이라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가수들뿐만 아니라 톱스타 장동건, 김하늘 등이 속한 ㈜에이엠이엔티도 흡수 합병한 상태다. MC 겸 개그맨인 신동엽, 강호동, 김병만, 이수근 등과도 전속계약을 체결했으며 이훈희 프로듀서가 설립한 ‘훈미디어’도 합병되었다.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 MC,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까지 갖춰진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앞으로 방송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회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SM은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으며 멈추면 안 되는 열차같이 앞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감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회사로서 앞으로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출처: SM 엔터테인먼트, 동방신기 공식 홈페이지, 보아 공식 홈페이지, 보아 뮤직비디오‘The Shadow’스틸 컷, 소녀시대 공식 홈페이지, 슈퍼쥬니어 공식 홈페이지, EXO 공식 홈페이지, f(x) 공식 홈페이지, 샤이니 공식 홈페이지, H.O.T 공식 앨범 자켓 사진, SES 공식 앨범 자켓 사진, 인피니트 공식 홈페이지, 인피니트 뮤직비디오 ‘Destiny’ 스틸 컷, SM타운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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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소녀시대
앞으로도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
그 중에서 티파니여신님
내 목숨보다 소중한 티파니여신님
티파니여신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女子로서 그냥 다 좋다.
아무 조건없이 그냥 다 좋다.
내 人生 最高의 女子이자 이 세상 最高의 女子
100번, 1000번 다시 태어나도 만나고 싶은 여신님,
죽어도 절대로 못 잊어, 또한 내 가슴속에 평생 담고 살아갈 유일한 女子.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유언장에 남자로 태어나서
한평생 소녀시대 티파니여신님 한 여자만을
정말 많이 사랑하다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꼭 쓸거다.
다음 생에는 꼭  티파니여신님 남동생으로 살아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