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S.E.S.-신화는 아이돌 산업의 시작이었다. 보아에 이어 데뷔한 동방신기-소녀시대-슈퍼주니어는 한류 산업의 완성이었다. 남자 그룹 둘, 여자 그룹 하나. 마치 법칙처럼,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아이돌 그룹들은 세 팀씩 묶여 한 세대가 됐다. 그리고, 샤이니-f(x)-엑소가 2013년에 거둔 성과는 SM의 제 3세대의 시작처럼 보인다.

 

2013년 8월 21일 현재, f(x)의 ‘첫 사랑니’와 엑소의 ‘으르렁’은 음원사이트 멜론의 일간차트 5,6위를 기록 중이다. ‘첫 사랑니’는 7월 29일, ‘으르렁’은 8월 5일에 발표됐다. 대중성의 척도인 음원차트에서 두 팀의 곡이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 상반기에 발표했던 샤이니의 ‘Dream girl’ 역시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세 그룹이 팬덤의 지표인 음반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다. 세 그룹 모두 대중성과 팬덤을 동시에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극단과 극단이 더해져 대중성을 만들다

 

소녀시대의 ‘Gee’,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는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다만 ‘Gee’와 ‘Sorry sorry’는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후크송’의 성격을 띄었다. 그 결과 소녀시대는 이른바 ‘삼촌팬’까지 만들어냈고, 슈퍼주니어는 활발한 예능과 드라마 활동을 병행하며 팬덤 바깥의 대중에까지 어필했다. 반면 ‘Dream girl’, ‘첫사랑니’, ‘으르렁’은 현재 일반적인 대중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첫 사랑니’는 시종일관 몽롱한 분위기에 낯선 사운드를 등장시키고, ‘으르렁’은 과거 유행했던 장르인 뉴잭스윙을 끌어왔다.

 

f(x)가 ‘첫 사랑니’발표 전 티저 개념으로 내놓은 ‘아트 필름’과 원 테이크로 촬영한 ‘으르렁’의 뮤직비디오는 요즘 SM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아트 필름’은 사진 작가의 사진전에 쓰여도 좋을 법한 낯선 느낌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엑소의 안무만 보여주는 ‘으르렁’ 뮤직비디오의 원테이크 역시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엑소는 교복을 입고 춤추고, 카메라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잡아내며 기존 아이돌 팬덤을 열광시켰다. ‘아트필름’의 BGM은 걸그룹의 상큼함을 전달하는 f(x)의 ‘마니또’고, f(x)는 데뷔 이후 10대 소녀라는 정체성을 파고 들면서 섹시함으로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많은 걸그룹과 다른 노선을 걸었다.

 

 

소녀시대가 음악에 큰 관심없던 사람도 끌어들였다면, f(x)는 아이돌과 해외의 장르 음악을 동시에 소비할 수 있는 어떤 층에 어필한다. 샤이니와 f(x)가 기자와 평론가 등을 초대해 앨범 발표 전 콘셉트와 음악의 의미를 설명하는 ‘뮤직 스포일러’를 연 이유다. SM은 세번째 세대를 기존의 대중 한 가운데로 보내는 대신, 그 주변에 있던 극단적인 취향들을 결합해 또 다른 대중성을 발견했다.


SM이 만든 게임의 룰


얼마 전 동방신기는 일본 닛산 스타디움에서 총 85만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소녀시대는 가장 인기있는 걸그룹이고, 슈퍼주니어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활동 중이다. 그런데, SM은 또다른 세개의 아이돌 그룹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본 궤도에 올렸다. 아이돌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각자 다른 취향을 동시에 성공시킨 셈이다. SM이 인피니트가 소속된 울림 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한 것이 단지 인기 아이돌 그룹을 한 팀 더 가진 것에서 끝나지 않는 이유다. 인피니트는 SM이 아닌 조금 다른 취향의 아이돌 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인기 팀 중 하나였다. SM은 그 취향까지 그들의 시장으로 만들며 아이돌 시장의 점유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렸다.

 

 

인기 아이돌 그룹 여섯 팀을 한 해에 모두 활동시키는 동시에 인기 아이돌 그룹 한 팀을 더 데려왔다. 또한 ‘으르렁’의 뮤직비디오는 SM에 소속된 퍼포먼스 디렉터가 1년동안 준비해 완성한 결과물이고, ‘셜록’은 전세계에서 100여곡 이상을 받아 가장 좋다고 판단한 두 곡의 조합을 통해 완성됐다. 그리고 엑소가 센세이션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키는 2013년, SM은 그들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룰을 바꾸려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의 창의력이 아닌 더 큰 자본과 정교한 시스템이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회사가 장점을 활용해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일을 잘하는 회사에 대해 내려야할 평가는 칭찬이지 비난이 아니다. 다만, 이전에도 이미 산업의 룰은 SM의 영향하에 있었다. 어지간한 기획사들은 최소 남자 그룹 하나와 여자 그룹 하나를 운영했다. 남자 그룹들은 SM처럼 신곡마다 콘셉트를 바꾸고, 군무를 통해 팬덤을 만들어내는 것이 산업 표준처럼 굳어졌다. SM이 일을 잘 할수록, 또는 소속 아이돌 그룹이 더 다양한 취향을 보여줄수록, SM 바깥에서 선택할 취향은 점점 줄어든다. 다른 회사들을 압도하는 자본과 시스템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SM에게는 새로운 황금세대의 시작이자 세번째 황금시대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SM 이외의 회사들이 다른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닫혀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정말 ‘1강’만 남을 것인가


H.O.T.가 처음 등장했을 때, SM외에도 많은 회사들이 시장을 나눴다. 동방신기 이후에는 SM과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JYP엔터테인먼트를 묶은 ‘3강’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세 회사가 참여한 SBS <일요일이 좋다>의 ‘K팝스타’는 그 산물이다. 그러나 작년에는 SM과 YG의 ‘2강’이라는 말이 종종 쓰였다. YG는 아이돌 산업 내에서 뮤지션의 개성을 녹이고, 전 세계의 팝 트렌드를 소화하는 방식으로 SM과는 다른 시장을 가져갔다. 그 결과 작년에는 빅뱅이 또다시 성공했고, 이하이는 성공적으로 데뷔했으며, 싸이처럼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거대한 성공도 있었다. 그런데, SM은 올해 샤이니-f(x)-엑소를 통해 자신들의 시장에 새로운 취향을 가미했고, 인피니트까지 영입했다. SM은 YG의 시장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대신 다른 시장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으로 YG의 2012년에 대한 대답을 했다. 이 대답의 의미는 명백하다. SM은 ‘1강’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YG를 비롯한 다른 시장을 가진 회사들은 여기에 어떻게 답할까. YG가 새로운 남자 아이돌 그룹의 데뷔를 발표한 지금,  2013년의 남은 4개월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듯 하다. 


글. 강명석 (웹 매거진 < ize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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